2023년 6월 21일 수요일

귀여움과 파시즘

만약 귀여움이 무해함과 가깝다면 그건 파시즘과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해로움과 부정접두어의 조합

추해 보이는 것, 불결한 것의 적출(elimination)

귀여움은 곧 무해함이고 무해함은 곧 지고의 쾌락이고--"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최은영)

--요즘 사람들은 쾌락에 기꺼이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귀여운 건 자본주의와도 가깝다는 생각.

동물화하는 자본주의란 말이 딱 어울리네.


2023년 6월 20일 화요일

workshop

I have searched, found no answers, but why is a workshop called a workshop? 

In academia, workshops are being held where you learn stuff and calculate stuff. It has nothing to do with a shop (where you buy stuff) and not so much work IMO. So why workshop?


@Susan Confusion may arise from the fact that in Britain the term 'shop', as well as meaning 'a small building' is most frequently used to mean a retail premises. The English were, after all, said by Napoleon, to have been 'a nation of shopkeepers'. A place where goods are sold, is the lead meaning in the UK and across a large part of the world where Britain has held influence. In parts of Asia, for example, few would perhaps think of 'shop' as anything other than that. Hence 'workshop' might be confusing to a person unfamiliar with the wider meaning of 'shop'.

2023년 6월 16일 금요일

미인의 계보

고등학교 때 일본 만화 굿즈를 모아 파는 숍이 하나씩 생겼다. 거기서 어떤 자그마한 책을 봤는데 뒷쪽에 긴 글이 실려있었다. 미형의 여자 캐릭터를 잘 그리는 일본 만화가의 계보를 그리는 글이었다. 눈의 표현에 반짝이를 도입하고.. 등등 그런 자잘한 것을 포착하고 분별하면서 미형의 캐릭터가 시대별로 어떻게 변해갔는지, 어떤 이유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는지, 어떤 계기를 통해 미형 캐릭터의 표준이 변해갔는지를 설명했다. 매우 흥미진진한 글이었다. 일본 사람이 쓴 글이었는데 번역된 글이었다. 그 글을 다시 보고 싶은데 어떤 책인지부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번씩 생각이 나는데 춘향 영정에 관한 논란을 보니 또 생각난다.

2023년 6월 14일 수요일

할 포스터 최근 나온 인터뷰

https://www.novembermag.com/content/hal-foster-extended/

아련하다...ㅋㅋ

폼 미쳤다

https://www.rochester.edu/in_visible_culture/issue1/crimp/crimp.html

한때 문화연구 동지가 모두 미술사로 돌아서는 시대에, 크림프의 일갈

"When Foster argues that a shift from art history to visual culture–or what I insist on calling cultural studies–entails a loss of history, what he seems really to mean is the loss of art history, the historicity of artistic forms as they are understood through the deferred action of avant-garde practices in the present. But far from abandoning history, cultural studies works to supplant this reified art history with other histories, histories written, for example, in relation to "the Warhol we need and the Warhol we deserve." What is at stake is not history per se, which is a fiction in any case, but what history, whose history, history to what purpose."

감성의 분할에 맞서는 동시대인의 기분관리

동시대인의 삶의 관건은 기분관리다. 많은 사람들이 제 자존감을 미친듯이 사수하려고 애쓴다. 기분이 나쁘다는 건 매우 안 좋은 신호다. 내 기분이 나쁘다는 건 세계의 오작동이다. 혹은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위협이다. 

세계와 나 사이에서 기분을 조절하는 행위는 매우 정치적이다. 기분-항상성의 유지는 면역체계와 비슷하다. 내 세계를 오염시키는 무엇은 제거되어야 할 위험요소다. 이는 매우 치열하게 작동한다. 

동시대인은 세계가 감성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미친 감성 투쟁을 설명할 길이 없다.

2023년 6월 5일 월요일

한영인, 1970년대 창작과 비평 민족문학론 연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논문, 2012 노트

민족문학론은 1990년대 전까지 문학사를 선도했으나, 1990년대로 오면서 포스트 담론이 등장하면서 민족주의를 낡은 이데올로기로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됨. 여기에 따르면 민족문학론은 이미 해체되고 있는 근대적 주권 형식에 포박되어 민족을 특권화하는 배제와 위계 담론에 불과. -> 민족문학론은 시효 만료 -> 역사화 작업 -> 민족문학론을 역사적 구성물로 바라볼 것을 요청

기존연구: 백낙청의 민족문학론을 소부르주아적 담론(1960년대 <시민문학론>)이 자기비판과 쇄신을 통해 민족적, 민중적 관점(1970년대 <민족문학론>)을 획득해가는 과정으로 봄

필자: 1960년대를 미성숙한 것에서 보는 기존 관점에서 탈피해 1960년대에서 70년대는 발전이 아니라 이행이다라고 봄. 

2. 1960년대의 담론지형과 창작과 비평
- 1960년대 순수-참여 논쟁에서 참여파는 그리 논리적이지 않았음.
- 따라서 백낙청이 <창작과 비평> 창간호에서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에서 비평입론을 세울 때 염두에 뒀던 것은 참여파의 민족주의 <- 하지만 대부분 1970년대 민족문학론을 검토할 때 1960년대 참여파의 연장선에서 이해 -> 오류
- 1960년대 순수-참여 논쟁을 포괄하는 더 큰 당대적 담론 지형이 있음: 저항적 민족주의의 대두
- <창작과 비평>에는 유기적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 문학론이 공존
- 백낙청의 <시민문학론>(1969)은 자유주의와 절연하고 유기적 공동체주의(=공화주의=/민족주의)로 확고한 이행을 보여주는 글

1) 저항적 민족주의 대두와 저항 민족주의 문학담론의 창출
~ 419 -> 516에서 박정희는 정권 정당화를 위해 민족주의 동원. 경제적으론 내포적 공업화 추진, 민족적으론 통일을 추구하면서 이데올로기적으론 반공 <-오히려 사람들은 419의 완성이라고 보고 좋아했음
~ 내포적 공업화가 미국의 간섭으로 실패하고 수출 지상주의로 전환 -> 경제자립 불가/ 일본 차관 도입(=반민족=식민지악몽) -> 63사태(1964-5): 한일협정반대투쟁 -> "매판"이란 단어 유행 -> 반미: 입으로는 민주주의 실제로는 제국주의 -> 저항적 민족주의 발호
=> 저항적 민족주의와 박정희 민족주의 사이에 그어진 전선. <청맥> 같은 문예지가 주축. 하지만 시일야 방성대곡처럼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차원. 민족의 수난, 외세를 물리치자! 우리것이 좋은 것 그정도 수준.
~"매판문학"에 대한 비판: 전통문화는 어디가고 서구문학과 이론이 잠식한다 "뉴욕과 파리에서 유행하는 병을 수입해다 앓는"다!!

2) 1960년대 창작과 비평
- 1960년대 창작과 비평은 유기적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가 공존하고 있었음
- 저항적 민족주의와 선을 그음으로써 오히려 참여문학 옹호자에게 '또 다른 형태의 순수'라고 비판받기도 함
- 김수영의 견해와 결을 함께 함. " 사회참여적인 것이나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도 좋다."
- 저항적 민족주의 진영의 비논리성, 감상주의 등을 쇼비니즘으로 봄
- 저항적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해외문학과 국내문학을 비교하는 것을 매판비평이라고 봄
- 감상을 벗어나는 방법 "지성"의 강조
-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공존은 1969년 <시민문학론>을 통해 깨짐

3) 시민문학론: 자유주의와의 결별사
- 백낙청은 차관도입을 처음에는 경제적 자립이란 측면에서 호의적으로 바라보지만,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폭력->소시민의 생산을 보고 낙담
- 당시 김현 등 68문학그룹 사이에서 유행하던 소시민의식은 백낙청이 보기에 사회 현실을 외면하거나 긍정하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음 -> 소시민의 역사적 진상을 알았을 때 과연 소시민임을 '의식'하는 것정도로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 프랑스 혁명에서 시민모델을 찾지만, 프랑스 역시 시민에서 부르주아로 타락함. 시민은 우리가 쟁취해야하는 미지, 미완의 인간상
- 한국에서 시민의식은 동학, 31운동 419등의 역사에서 찾아질 수 있음
- 시민문학: 시민 계급의 문학이 아니라 시민의식으로 충만한 문학.  규범: 리얼리즘
~ 레이몬드 윌리엄스, D. H. 로렌스 분석. 백낙청에게 자유란 소극적 자유(개인주의)가 아닌 적극적자유(공동체주의) <- 이사야 벌린

- 공화주의에 입각한 최근 연구: 간섭없는 상태 + 비예속 상태 = 비지배 자유원칙
- 백낙청의 <시민문학론>에서 전통+자유 개념 -> 공화주의적 의미에서의 자유
- 자유로운 주체 + 억압적 현실으로부터의 해방
- 백낙청이 소환하고자 하는 전통은 동학, 31, 419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자유와 해방에 대한 혁명적 '의식'이지 민족 정체성이 아님
- 하지만 백은 1970년대 민족주의로 급선회, 이유는 한국은 공화국이라기보다 독재국이었고 온전한 국가라기보다 분단 된 국가로서 반공 이념이 앞섰기 때문.
- 1970년대 백낙청이 수용한 민족주의는 공화주의 정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분단현실의 모순을 '먼저' 해결하는 실천적 이념 "민중의식을 이러한 역사적 사명에 부응하는 시민의식으로 발전시키는 과업이 곧 민족문하그이 본질을 이룬다."

3. '민중적' 민족문학론으로 가는 길
1) 
- 1970년대 백낙청은 민족문학론을 제기하면서 전통론을 확립하려고 하지만 초월적 전통에 과한 것이 아니었음
- 민족문학론은 민중에 방점: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문학만이 참다운 민족문학
- <창작과 비평>에서 1972년부터 전통론이 집중적으로 게재: 조선후기 문학 연구 <- 이는 역사학에서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조선후기사회경제사 연구가 등장한 시기와 일치

분단사학론
-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강만길의 보완
- 올바른 민족주의 주장: 민족을 근대 이후의 개념으로 한정 -> 국가, 국민, 민족

2) 비판적 정치경제학과 문학의 만남
- 민족경제학에 대한 관념은 1970년대부터 시작
- 박현채: 조선후기가 아니라 식민지시기를 출발점으로 삼음 <- 경제모순은 분단모순부터 분단모순은 식민지시기부터 -> 종속경제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