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31일 목요일

사토 도신, 근대 일본 관전의 성립과 전개

관전 운영 시기

1기 1907-25 문부성미술전람회, 18년 동안 총 12회

2기 1919-34 제국미술원미술전람회 총 15회 (23년 관동대지진으로 미개최)

3기 1937-43 문부성미술전람회, 총 6회

-> 1945년까지를 근대라고 보았을때 후반기에 해당


관전 설립 목적

1) 화단 통합

- 1890년대 : 수많은 미술단체 조직--구파(전통계승)와 신파(개혁)가 일본화-회화 분야에서 첨예하게 대립

==구파: 궁내성 중심 활동

==신파: 문부성 산하 도쿄미술학교 중심 활동

=> 결과적으로 문전을 중심으로 이권 다툼(심사위원 선정, 등수 결정 등 제도) 발생

2) 프랑스 살롱 모델 수입

- 1900년 만국박람회를 기해 문부성 관료 3명(마사키 나오히코, 후쿠하라 료지로, 오카다 료헤이)+오스트리아 공사(마키노 노부아키)가 만나 프랑스 살롱 형태 관전을 만드는 과제가 시급하다고 결론 -> 1906년 사이온지 긴모치 내각이 출범하고 마키노가 문부대신으로 임명되어 문전 개설 실현

- 마사키 나오히코: 1901년부터 도쿄미술학교 교장 30년 근무

- 후쿠하라 료지로: 3대 제국미술원장(1대는 모리 오가이 2대는 구로다 세이키)

- 마키노 노부아키: 이후 궁내대신, 내대신 (메이지유신 주역 오쿠보 도시미치의 차남, 구로다 세이키와 같은ㅇ 사쓰마 출신, 오카쿠라 덴신의 1년 후배) -> 개쩌는 인맥과 집안

3) 미술진흥

가) 고미술보호: 메이지유신 이후 불교배척운동으로 개판된 고미술씬의 관리

나) 식산흥업: 자포니즘의 유행에 따른 인기상품(공예)의 산업적 육성

다) 미술교육: 서양미술을 정착시키기 위한 문부성 노력(탈아입구). 1887년 도쿄미술학교 설립(고등교육)

전개

- 프랑스가 1863년 개혁을 통해 권력 집중된 아카데미에서 살롱과 미술학교를 분리해내려고 한다면 일본은 조금씩 신설된 제도를 제국예술원으로 통합

== 프랑스: 학사원>제3분과(문학과미술)->미술아카데미->대개혁(1863)제국특별미술학교 칙령(미술학교와 살롱을 미술아카데미와 분리)

== 일본: 미술학교->관전>제국미술원>제국예술원

- 왜 그렇게 미술제도를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 했을까?

== 자포니즘은 메이지시기(1868-1912) 전기간 걸쳐 존재했기 때문에 일본 미술제도가 자포니즘에 조준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사토 도신) -> 서양미술 개념 이식 자체가 자포니즘을 위한 수용일지도.

== 일본은 자포니즘을 공예가 아닌 미술로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음 -> 빈 견학을 통해 '순정미술'을 강화하기 위한 관전 설립

- 의외의 결과

관전이 시작되자마자 자포니즘 종식 * 유럽에서는 일본에서 아프리카나 중국으로 관심 이동 -> 일본에서는 1910년이후 자포니즘(서양)에서 국내와 아시아(동양)으로 정책축이 이동 -> 동양미술대관(동양미술사 구축), 조선미술전람회, 대만미술전람회, 대만총독부미술전람회 등 개최 -> 정책의 토대가 서양에서 동양으로 전환하고 파시즘 시기 대동아공영이라는 아시아정책으로 연결 <- 핵심에 문부성의 관전이 있음


자살

 수감 중이던 오송참사 감리단장, 자살 시도 후 치료 중 숨져 - 경향신문

오송 참사 감리단장이 교도소에서 자살시도 후 결국 숨졌다고 한다. 사회 곳곳에서 죽음이 넘쳐난다. 노동자가 하루에도 계속 죽어나간다고 한다. 관리감독자 급들의 죽음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요즘은 정치 사회 뉴스에서 그들의 자살을 가끔씩 발견한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산업재해에 해당한다. 

2025년 7월 28일 월요일

자본주의 하체

<케데헌>에서 뭔가 이상한데 하면서 지나갔다가 나중에 알게된 건 소위 '자본주의 하체'라고 불리는 것. 1위를 결정짓는 마지막 순위경쟁 공연에서 약속되지 않았던 <take down>이란 노래가 나오며 헌트릭스는 당황한다. 루미는 갑자기 변해버린 두 동료의 태도에 어쩔줄 모르면서도 연습한 안무를 따라 리듬에 맞춰 골반을 흔드는데 얼굴은 어쩔줄몰라하며 거부하지만 몸은 이미 노래에 지배당해 춤을 추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걸스데이의 유라라는 사람을 원조로 하는 '자본주의 하체'라고 명명하였다. 이 말은 거의 직접적으로 성매매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크리피한데, 한국인이 그걸 보고 웃는다는 점은 더욱 크리피하다. 이 짤이 더욱 기묘한 이유는 몸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지 수동적으로 움직이는지 분간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아니 얼마간은 능동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2025년 7월 21일 월요일

루프랩 vs. 행사성 사업

축하합니다, 부산이 아시아의 미디어 아트 허브 도시로 거듭났습니다(겠냐고) - ma-te-ri-al

루프랩부산은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지자체의 흔한 행사성/축제성 사업일 수 있다. 행사성 사업에서 중요한 건 뭐냐? 백종원의 지역축제 살리기 프로젝트와 결을 같이 한다고 보면 된다. 특정 지역의 시간당 생활인구 수와 평균 체류 시간, 소비금액 같은 것이 문제가 된다. 핵심은 인구와 돈이 돌게 하는 일이다. 진지한 미술인들이 루프랩부산이 왜 제대로 된 미술행사가 아니냐고 뭐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제대로 안 보고 사진만 찍는 자도 경멸할 것이다. 만약 루프랩부산이 뭔지도 모르고 와서 즐기다 가는 사람을 본다면 마찬가지로 경멸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항공쇼인지 뭔지 경기도에서 하는 행사에 예전에 3일동안 하는 데 100억이 넘게 들어간다는 이야길 들어본 적이 있다(찾아보니까 그정도 규모는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몰린다. 그 많은 석유를 태워서 하늘을 시끄럽게 만드는 걸 그냥 보고만 있는 행사에.. 가족들이 정겹게 손잡고 와서... 또 그럴지도 모르지. 대중이 행사에 와서 좋아하는 것과 잘못된 행사를 추진하는 건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둥. 잘못된 행사라도 대중은 좋아할 수 있다는 둥.

지자체에게 필요한 건 미술행사일까 항공쇼일까? 이건 행사가 어떤 목적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르다.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지자체는 어그로를 끌어서 외부 사람에게 돈을 쓰도록 유도할 수 있고 그것 자체를 두고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아니 해야만 하는 일이다. 애초에 루프랩은 미술행사로 상상되었을까? 최소한 부산시라는 의사결정권자의 눈에는? 나는 항공쇼와 같았다고 본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유령같은 것... 그 유령 같은 것에 홀려서 뭔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멍하게 있다가 간다. 대부분 미술관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미술작품에 관심이 없다. 이들은 그 분위기를 제 나름대로 즐기다가 간다. 옛날 사진을 보면 첨성대에 단체로 마구 올라가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유물을 보는게 아니라 제맘대로 사용한다. 이런 사물의 '전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 미술계인은 그 사람들을 진지한 관객이 아니라고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아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술관을 방문하는 대다수는 그런 안 진지한 관객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지자체는 그런 안 진지한 관객에게 미술관의 사활을 걸고 있다. 그건 잘못된 정책이 아니다. 마찬가지의 관객이 루프랩에 왔다. 행사성 사업의 관점에서 볼 때 루프랩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반대로 만약 진지하게 미디어아트 전시 할거고 지역 예술인들도 좋아할 거니깐 예산지원 해주세요 부산시장님. 시장님이 들어줬을까? 글쎄다. 

비판하는 건 좋다. 당연히 비판해야만 한다. 하지만 미디어아트의 불모지 한국에서 이런 미디어아트 관련 대규모 행사가 얼렁뚱땅 만들어졌다. 얼렁뚱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먹거리 축제 일색인 지역 행사판의 관점에서 보면 특색있는 컨셉의 행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걸 하지말라고 하기 보다, 나 같으면 다음에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항상 나오는 이야기지만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어쩌면 관심과 응원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더 읽어볼 글

2025년 7월 17일 목요일

기념 과잉

문체위, 3740억 증액 추경안 의결…野 '한강 노벨상 행사 6억 필요하나' | 서울경제

기념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기념하는가? 어떻게 기념하는가? 기념의 효과, 결과는 무엇인가?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행정 단위의 기념행위는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미술비평'의 대상으로서... 


기념이 기억으로 이어지려면

<기념에서 기억으로>라는 책에서 기념은 제도화된 기억이라고 함. 

기억의 사회화와 기억의 제도화의 차이?

기념비는 그럼 무엇인가? 기념비는 예술작품(감각의 산출물)이면서도 제도적 상징을 왔다갔다..

2025년 7월 16일 수요일

사변적 윤리

사변적 실재론은 사변적 미학을 지나 사변적 윤리로 가는 것 같다. 해일스에 따르면, 사물 그 자체의 '세계'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사물의 일부를 증거적 관점에서 알 수 있고 이를 경유해서 사물의 세계를 상상적으로 투사할 수 있다. 이는 사물 그 자체의 세계와는 다른 유사관계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사물 그 자체로 다가가려는, 혹은 그것을 인정하고자 하는 인간적 노력이자 윤리일 수는 있다. 

Katherine Hayles, Speculative Aesthetics and Object-Oriented Inquiry (OOI), (2014) 결론 부분

"이 모든 논의는 결국 사변적 미학(speculative aesthetics)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나는 먼저 인간의 지각(perception)이 항상 미학의 중심에 있었다는 관찰에서 출발했고, 이러한 전제에 대해 사변적 실재론이 강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다른 객체나 존재들의 세계관을 그들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에 관한 증거에 기반하여 상상적으로 투사(imaginative projection)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중요한 한 가지 주의점은, 이러한 투사들은 유비론(analogy)일 뿐이며, 객체 고유의 경험과 헷갈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논의 속에서 사변적 실재론이 수정된다면, 미학 역시 수정된다. 전통적인 미학에서, 미적 경험이 객체의 고유한 성질에 기초한다는 입장과 그것이 인간의 지각 행위에 의해 형성된다는 입장은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이 접근에서는, 두 입장이 하나의 방식으로 융합된다. 즉, 객체의 고유한 성질은 증거(evidentiary bases)를 통해 표현되며, 인간의 상상력과 지각은 이 증거들을 매개로 객체의 세계관과 유사한 투사를 창조한다. 동시에, 이 미학은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 기반에서 벗어나, 생물학적 존재, 생명체, 비활성화된 객체/무생물을 포함해 개개의 실재 객체(real object)가 가진—혹은 좀 더 강하게 표현한다면, 권리를 가진—세계에 대한 고유한 경험을 인식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재배치된다. 

나는 이 접근을 사변적 미학이라고 부를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것은 사변적 실재론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원칙들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 통찰을 바탕으로 미학의 임무를 재정의한다. 이 글에서 나는 사변적 실재론과 사변적 미학 사이의 일종의 젠 테니스 경기를 연출했다. 여기서 두 입장은 서로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파트너로 배치되며, 서로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변적 미학은 사변적 실재론의 부산물이라기보다는, 객체 지향 조사(OOI: Object-Oriented Inquiry)의 방법론에 기반하여 사변적 실재론을 보완하는 관점으로 자리 잡는다. 이는 후인간(posthuman) 세계—즉, 다양한 생명체, 객체, 인공지능이 함께 경쟁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역동적 환경—에 적합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