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6일 목요일

박찬경의 프로젝션적 회화 사전 메모

머랄까. 아직 전시를 보지 않았지만 이미 그런 바이브를 느낀다. 이건 대작이라고. 최진욱에 따르면 오픈스튜디오 품평회격 자리에서 이번 작업을 박찬경이 자신 없어 했다고 한다. 왜냐면 회화는 자신의 본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진욱이 여기서 해석한다. 화가의 무능함 때문에 박찬경 본인이 스스로 등판했다고. 박찬경의 이번 회화는 '아 이번에 회화에 한 번 도전해 볼까?'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부과된 긴급성' 같은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지로 보았지만 박찬경의 회화는 회화라기보다 이미지다. 정통파 화가, 페인털리 페인터의 페인팅이라기보다 뭔가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합성적인, 가공된, 이런 수식어가 적합한 무언가 얄팍한 말 그대로 이미지란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실제 눈으로 보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 <<안구선사>> 시리즈는 회화라기보다 영화의 미장센처럼 '구성'된 감각이며, '상징주의적인 것'이란 최근 발굴한 나의 주제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상징주의적인 것의 심급에 역시 박찬경 자신의 필생의 주제, 잃어버린 소중한 나의 것, 가족, 우리, 민족, 국가의 이미지,  즉, 실재가 도사린다고 느낀다.) <남매탑>이나 <칠성각>은 그야말로 어색한 초보 회화, 합성 이미지, 마치 장종완 같은 포토샵 합성 기반 페인터와 동일한 질적 수준을 보여주는데, 아무튼 이건 나아간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퉁쳐서 여러 주제와 맞물려 쉬운 단어로 '언캐니'하다. '박찬경이 회화?'라고 했을 때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박찬경은 미디어 아티스트다.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업한다. 전시 중에 뒤샹의 유명한 핍홀(peep hole) 작업, <에탕 도네>를 노골적으로 참조한 디오라마가 있다. (<에탕 도네>가 앞에서 보면 여성 나부, 옆에서 보면 얄팍한 이미지의 조합이라면, 박찬경의 작업은 그것을 한 번 다시 한 번 '원본'으로서 참조하며 뒤집는 것 같다. 말하자면 '납작하지만 원본'이란 역설.) 마치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오줌으로 패러디했듯이, 서울대 현발 계보의 작가에겐 범생이 같은 '이유 있는' 참조점이 있다. 이것이 어쩌면 박찬경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어쨋든 여기서 디오라마는 복합적인 탈식민 상황이 스치는 미디어다. 그에게 회화도 (다분히 서구적인 전통 매체라는 점에서) 그런 것일 것이다.

2026년 3월 25일 수요일

금동현, 하녀

영화 비평서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전반부만 아직 읽었지만 김기영의 연보를 털며 빈칸을 매워가는 저자의 감각이 거의 사이코메트리 수준. 미술사학자적 비평가인 할 포스터의 이미지가 영화비평가에게 겹쳐지다니. 암튼. 이건 이 책의 극히 일부분에 대한 노트이긴 하나, 금동현이 김기영이 초기 연극을 연출했고, 여기서 체홉이나 입센을 참조했다고 하며, 체홉이 사실주의자란 사실을 들어 초기 김기영을 사실주의자로 보는 기존 견해와 반대로 '김기영은 표현파였다'는 식의 반론을 펴는데(김기영의 연극 연출자 시절을 짚어내는 부분이 매우 흥미로움!), 오늘날의 연구에서 체홉은 심리적 사실주의자=상징주의자이기도 하다. 아마 금동현의 전공이 희곡은 아니기에 한계가 있었을 거라곤 생각하지만 글 전체의 감각이 이런식으로 촉수를 뻗쳐 빠르게 미루어 짚어버리는 태도가 발견된다는 점은 아쉽. 그런 면에서 사이코메트리 맞긴 맞네. ㅎ

* 체홉과 상징주의와 관련해선 차지원,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에 실현된 상징주의적인 것> 2024를 볼 것. 이 논문은 우연히 디비피아 인스타에 광고로 떠서 재미삼아 읽게 된 논문인데, 차지원이란 교수에 흥미가 당길 정도로 재미있는 논문이었고, 그 찰나 금동현의 <하녀>를 읽게 되었는데 본문에 뜬금 체홉 이야기가 나와서 뭐 이런 초연결?

2026년 3월 24일 화요일

보면 좋을 전시

ACC 필름앤비디오 《아시아의 장치들》국립아시아문화전당 - 전시 - 현재전시 - 상세보기(상세)

국제갤러리 박찬경 개인전《 안구선사》 KUKJE GALLERY

전북미술사 연구시리즈 《전수천: 언젠가 거인은 온다》전시안내 > 전시안내 > 전체 | 전북특별자치도립미술관

2026년 3월 23일 월요일

유운성, 센서쉽-이펙트 요약

 ANNUAL PARALLAX: Notes on the Censorship-Effect of Film Festivals and K-movie Phenomenon

심사와 검열. 결과는 같은데 원인은 정반대이다. 유운성이 보는 (국제) 영화제란 곳은 큐레이터나 프로그래머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검열 괴물의 영역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도르노 <미학이론>의 인용은 공허한 반면, 이 글에서 암시적으로 (그리고 진정으로) 요청하고 있는 것이 국제 영화제의 새로운 센서쉽의 표준을 만드는 '진정한' 뉴 코리안(아시안) 웨이브인 것 같아서...결국 영화제 밖은 없구나? 미술계에서 '비엔날레 포기 못해'와 비슷? 플러스, 유운성은 사실은 국제 영화제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더 아니꼬와 하는 듯? 흠. 다음은 요약.

1) 일본영화가 망한 건 일본영화가 질적으로 퇴보했다기보다 국제 영화제의 기준이 변하였음 -> 여기서 일본은 일본적인 것을 하지도,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지도 못하면서 애매하게 이중구속됨(사시적 태도) (* 유운성이 보기에 이전 세대 인지도를 얻었던 일본 영화는 굉장히 일본적인 것)

2) 그나마 하마구치 류스케가 보편성을 가져가려고 하는데 그 속에서도 갈팡질팡. 그 속에 일본 레거시를 물려받으려는 바이브가 있음. <- 이건 하마구치가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암튼 일본 내에서 다음 세대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좋은) 영화는 있기는 하나 국제 영화제에서 (유운성이 보기에) 온당하게 평가되는 것 같지 않음 <- 국제영화계에선 일본영화에 은근히 일본적인 것 강요

3) 유운성은 포괄적으로 국제 영화제를 기준 삼아 구성된 영화씬의 선별 과정을 검열-효과(censorship-effect)라고 부름 <- 여기엔 작품의 경향 뿐만 아니라 제작사의 입김 등등이 개입

4) 영화제를 보이콧하자는 이야긴 하지 않지만 엇비슷한 이야기를 <미학이론>을 통해서 함

5) 한편으로 검열-효과, 아시아, 한국의 영화는 국제영화제에서 검열-효과를 발생시킬정도로 독보적인 규준을 생산하지 못함. 다들 감독 개인 플레이에 그침

6) 여기서부터 난삽한데 아무것도 없는게 곧 한국적인 거고 그게 장르로 받아들여졌단 식의 냉소적인 평가. 근데 오히려 그 사이에서 새로운 검열-효과, 즉 규준을 세워줬으면 하는 희망을 넌지시 비침. 예: 봉준호가 장르가 되었는데 장르를 인지하지 못하네..? 

7) 암튼 영화제가 뭘 목적으로 하는지, 그걸 위해서 뭘 안보려고 하는지, 뭘 셀렉하고 뭘 배제 시키는지 이런 걸 봐야 아시아 영화를 논할 수 있음.  (지금까진 서구 규준을 보충해주는 수준...) 

2026년 3월 12일 목요일

오동진 메모

오동진이 장혜영에게 페이스북 댓글로 "앞으로 영화 만든다고 깝죽대기만 해보거라. 자근자근 씹어주마"라고 한 건에 관하여. 

정치인 장혜영과 영화감독 장혜영을 구별할 수 있을까? 

정치인에 관한 의견은 최대한 폭넓게 제출할 수 있고 그걸  수용해야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게 비록 쌍욕이라도.

2026년 3월 11일 수요일

나이가 들어 글을 쓰기 힘든 이유

나이가 들어 글을 쓰기 힘든 이유를 얼마 전까진 머리가 퇴화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좀 생각이 다른데, 점차 세계를 이해하고 사고가 복잡해져서 하나의 입장으로 사고가 정리되지 않기 때문일지도...모른다. 어느 아재가 말로는 끊임 없이 떠드는데 글은 안 되는 경우, 바로 이 경우가 아닌지 생각해볼 것. 소위 포스트-모던한 글쓰기는...

2026년 3월 3일 화요일

브리오슈 만들기

민하가 하는 걸 지켜보다가 얼마간 빵 만들기에 관심이 생겨서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오븐에 굽기를 반복했다. 빵 반죽이란 게 반죽하고 발효하고 지켜보고 또 발효하고. 어찌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던지. 만약 힘이 얼마나 투여되는지로 여성/남성을 나눈다면 베이킹이 여성의 영역이 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리오슈는 계란과 버터가 들어가는 빵인데 특히 버터가 많이 들어간다. 버터 먹는 게 싫어서 아주 조금만 넣었는데 만들 땐 맛이 어떠려나 우려했지만 오늘 샌드위치를 싸와서 먹어보니 꽤 먹을만 했다. 오늘 샌드위치는 당근라페 샌드위치. 통상적으로 라페에는 신만 단맛을 가미하지만, 나는 그냥 겨자와 올리브오일만 넣었다. 집에 맛이 가고 있는 청상추가 있길래 같이 넣어서 쌌다. 당근향이 엄청 강했다. 브리오슈는 약간 달콤하기도 약간 고소하기도. 다 약간약간씩. 꽤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