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일 목요일

인상적인 문구

 "창작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고, 일정은 준비되었으며, 기대는 형성되었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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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창작지원금을 받았지만 창작을 할 수 없다 — 지급보증보험 요구는 예술가 배제 장치다
강원문화재단 2026년도 전문예술지원 문학 분야(개인) 창작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급보증보험증권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 예술지원 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심각한 사례다.
창작지원금은 경제적 취약 상태에 있는 예술가에게 창작의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지급보증보험 가입을 필수 조건으로 요구하는 순간, 지원 제도는 ‘창작 능력’이 아니라 ‘금융 신용’을 기준으로 작동하게 된다. 신용이 낮은 예술가는 선정되고도 배제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다. 이는 지원이 아니라 선별이며, 창작 진흥이 아니라 창작 제한이다.
문학 창작자의 현실은 불안정하다. 고정 수입이 없고, 사회보험 이력도 취약하다. 장기간 창작 활동을 지속해온 이일수록 금융 신용에서 불리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채 보증보험을 요구하는 것은 창작 현장을 모르는 행정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공공 지원 제도가 시장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적용하는 순간, 가장 지원이 필요한 예술가가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더 큰 문제는 선정 이후 배제라는 점이다. 심사를 통해 창작 가능성을 인정하고도, 금융 신용이라는 또 다른 장벽을 세워 지원을 무력화하는 것은 행정의 책임 회피다. 이는 예술가에게 심각한 시간적·정신적 피해를 준다. 창작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고, 일정은 준비되었으며, 기대는 형성되었다. 그 모든 것이 보증보험이라는 문턱에서 중단된다.
공공 예술지원은 위험을 감수하는 제도여야 한다. 창작은 담보로 증명되는 활동이 아니다. 결과는 작품으로 증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 보증을 요구하는 것은 공공 지원의 취지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지급보증보험이 아닌 단계별 지급, 중간 점검, 정산 강화 등 대안적 관리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가장 배제적인 방식만을 고수하는 것은 제도 설계의 실패다.
우리는 묻는다.
창작지원금은 신용이 높은 사람에게 주는 혜택인가,
아니면 창작이 필요한 예술가를 위한 공공 지원인가.
신용이 낮다는 이유로 창작의 기회가 박탈된다면, 공공 예술지원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예술가에게 요구되어야 할 것은 담보가 아니라 창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증이 아니라 신뢰다.
강원문화재단은 지급보증보험 의무 규정을 즉각 재검토하고, 신용 취약 예술가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선정하고도 배제하는 제도는 공정하지 않다. 창작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이 형식적 절차에 의해 무력화되어서는 안 된다.
창작지원금이 창작을 막는 현실을 즉각 개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강덕구와 김어준

 변희재와 김어준을 경유한 음악에 관한 생각들 : 네이버 블로그

나 역시 오래 전부터 김어준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 봐야겠다 생각했었지만 강덕구의 책, <밀레니얼의 마음>을 보고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도 그렇다. 김어준에 관해 이렇게 우아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다만 나의 경우는 김어준이란 사람보다 그의 작업물에 좀 더 관심을 가질 것 같다. 물론 '악인열전' 같은 게 훨씬 펑크한 바이브이긴 하지만 한 사람에게 동기화되는 것보단 한 사물에 동기화되는 게 소모가 덜하다.

2026년 4월 1일 수요일

포스트휴먼 어린이

 하다하다 포스트휴먼 어린이까지 나오네. 아기나 어린이는 언제나 프리휴먼이거나 안티휴먼이거나 포스트휴먼 아닌지. ㅎㅎ

포스트 휴먼 어린이 | 카린 무리스 - 교보문고

2026년 3월 31일 화요일

개론서를 읽으면

당연히 -> 피피티로 정리한다.

2026년 3월 26일 목요일

장인어른 기일

처음 맞는 장인어른 기일이다.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민하에겐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먼저 물어보진 말자고 생각했다. 몇 번 얼굴을 대면하지 못했던 분이다. 어떤 분일까 혼자 상상해본 적도 있다. 좀 답답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은 그걸로도 과분하다. 

모쪼록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박찬경의 프로젝션적 회화 사전 메모

머랄까. 아직 전시를 보지 않았지만 이미 그런 바이브를 느낀다. 이건 대작이라고. 최진욱에 따르면 오픈스튜디오 품평회격 자리에서 이번 작업을 박찬경이 자신 없어 했다고 한다. 왜냐면 회화는 자신의 본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진욱이 여기서 해석한다. 화가의 무능함 때문에 박찬경 본인이 스스로 등판했다고. 박찬경의 이번 회화는 '아 이번에 회화에 한 번 도전해 볼까?'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부과된 긴급성' 같은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지로 보았지만 박찬경의 회화는 회화라기보다 이미지다. 정통파 화가, 페인털리 페인터의 페인팅이라기보다 뭔가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합성적인, 가공된, 이런 수식어가 적합한 무언가 얄팍한 말 그대로 이미지란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실제 눈으로 보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 <<안구선사>> 시리즈는 회화라기보다 영화의 미장센처럼 '구성'된 감각이며, '상징주의적인 것'이란 최근 발굴한 나의 주제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상징주의적인 것의 심급에 역시 박찬경 자신의 필생의 주제, 잃어버린 소중한 나의 것, 가족, 우리, 민족, 국가의 이미지,  즉, 실재가 도사린다고 느낀다.) <남매탑>이나 <칠성각>은 그야말로 어색한 초보 회화, 합성 이미지, 마치 장종완 같은 포토샵 합성 기반 페인터와 동일한 질적 수준을 보여주는데, 아무튼 이건 나아간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퉁쳐서 여러 주제와 맞물려 쉬운 단어로 '언캐니'하다. '박찬경이 회화?'라고 했을 때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박찬경은 미디어 아티스트다.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업한다. 전시 중에 뒤샹의 유명한 핍홀(peep hole) 작업, <에탕 도네>를 노골적으로 참조한 디오라마가 있다. (<에탕 도네>가 앞에서 보면 여성 나부, 옆에서 보면 얄팍한 이미지의 조합이라면, 박찬경의 작업은 그것을 한 번 다시 한 번 '원본'으로서 참조하며 뒤집는 것 같다. 말하자면 '납작하지만 원본'이란 역설.) 마치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오줌으로 패러디했듯이, 서울대 현발 계보의 작가에겐 범생이 같은 '이유 있는' 참조점이 있다. 이것이 어쩌면 박찬경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어쨋든 여기서 디오라마는 복합적인 탈식민 상황이 스치는 미디어다. 그에게 회화도 (다분히 서구적인 전통 매체라는 점에서) 그런 것일 것이다.

2026년 3월 25일 수요일

금동현, 하녀

영화 비평서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전반부만 아직 읽었지만 김기영의 연보를 털며 빈칸을 매워가는 저자의 감각이 거의 사이코메트리 수준. 미술사학자적 비평가인 할 포스터의 이미지가 영화비평가에게 겹쳐지다니. 암튼. 이건 이 책의 극히 일부분에 대한 노트이긴 하나, 금동현이 김기영이 초기 연극을 연출했고, 여기서 체홉이나 입센을 참조했다고 하며, 체홉이 사실주의자란 사실을 들어 초기 김기영을 사실주의자로 보는 기존 견해와 반대로 '김기영은 표현파였다'는 식의 반론을 펴는데(김기영의 연극 연출자 시절을 짚어내는 부분이 매우 흥미로움!), 오늘날의 연구에서 체홉은 심리적 사실주의자=상징주의자이기도 하다. 아마 금동현의 전공이 희곡은 아니기에 한계가 있었을 거라곤 생각하지만 글 전체의 감각이 이런식으로 촉수를 뻗쳐 빠르게 미루어 짚어버리는 태도가 발견된다는 점은 아쉽. 그런 면에서 사이코메트리 맞긴 맞네. ㅎ

* 체홉과 상징주의와 관련해선 차지원,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에 실현된 상징주의적인 것> 2024를 볼 것. 이 논문은 우연히 디비피아 인스타에 광고로 떠서 재미삼아 읽게 된 논문인데, 차지원이란 교수에 흥미가 당길 정도로 재미있는 논문이었고, 그 찰나 금동현의 <하녀>를 읽게 되었는데 본문에 뜬금 체홉 이야기가 나와서 뭐 이런 초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