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고, 일정은 준비되었으며, 기대는 형성되었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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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페이스북에서 https://www.facebook.com/share/p/17UKGW1SU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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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와 김어준을 경유한 음악에 관한 생각들 : 네이버 블로그
나 역시 오래 전부터 김어준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 봐야겠다 생각했었지만 강덕구의 책, <밀레니얼의 마음>을 보고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도 그렇다. 김어준에 관해 이렇게 우아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다만 나의 경우는 김어준이란 사람보다 그의 작업물에 좀 더 관심을 가질 것 같다. 물론 '악인열전' 같은 게 훨씬 펑크한 바이브이긴 하지만 한 사람에게 동기화되는 것보단 한 사물에 동기화되는 게 소모가 덜하다.
머랄까. 아직 전시를 보지 않았지만 이미 그런 바이브를 느낀다. 이건 대작이라고. 최진욱에 따르면 오픈스튜디오 품평회격 자리에서 이번 작업을 박찬경이 자신 없어 했다고 한다. 왜냐면 회화는 자신의 본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진욱이 여기서 해석한다. 화가의 무능함 때문에 박찬경 본인이 스스로 등판했다고. 박찬경의 이번 회화는 '아 이번에 회화에 한 번 도전해 볼까?'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부과된 긴급성' 같은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지로 보았지만 박찬경의 회화는 회화라기보다 이미지다. 정통파 화가, 페인털리 페인터의 페인팅이라기보다 뭔가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합성적인, 가공된, 이런 수식어가 적합한 무언가 얄팍한 말 그대로 이미지란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실제 눈으로 보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 <<안구선사>> 시리즈는 회화라기보다 영화의 미장센처럼 '구성'된 감각이며, '상징주의적인 것'이란 최근 발굴한 나의 주제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상징주의적인 것의 심급에 역시 박찬경 자신의 필생의 주제, 잃어버린 소중한 나의 것, 가족, 우리, 민족, 국가의 이미지, 즉, 실재가 도사린다고 느낀다.) <남매탑>이나 <칠성각>은 그야말로 어색한 초보 회화, 합성 이미지, 마치 장종완 같은 포토샵 합성 기반 페인터와 동일한 질적 수준을 보여주는데, 아무튼 이건 나아간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퉁쳐서 여러 주제와 맞물려 쉬운 단어로 '언캐니'하다. '박찬경이 회화?'라고 했을 때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박찬경은 미디어 아티스트다.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업한다. 전시 중에 뒤샹의 유명한 핍홀(peep hole) 작업, <에탕 도네>를 노골적으로 참조한 디오라마가 있다. (<에탕 도네>가 앞에서 보면 여성 나부, 옆에서 보면 얄팍한 이미지의 조합이라면, 박찬경의 작업은 그것을 한 번 다시 한 번 '원본'으로서 참조하며 뒤집는 것 같다. 말하자면 '납작하지만 원본'이란 역설.) 마치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오줌으로 패러디했듯이, 서울대 현발 계보의 작가에겐 범생이 같은 '이유 있는' 참조점이 있다. 이것이 어쩌면 박찬경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어쨋든 여기서 디오라마는 복합적인 탈식민 상황이 스치는 미디어다. 그에게 회화도 (다분히 서구적인 전통 매체라는 점에서) 그런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