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9일 수요일

벤야민 왈

"작가 자신이 자기 작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530쪽)

2015년 9월 8일 화요일

공의 경계 (2007-2010)

라이트노벨 <공의 경계> 극장판 애니메이션 7부작을 감상했다. 소설은 보지 않았는데 우오오..이거 뭐냐. 미친 대사들... 니시오 이신 이상의 임팩트가 있었다. 소설판으로 읽어보고 싶다. 이런 걸 몰랐다니!

백남준, 기원전/기원후 (1992)

이 글은 임종을 앞 둔 존 케이지를 위한 추모글이다. 자전적이기도 하며 추모적이기도 하고 비평적이도 한, 와 엄청난 글이다.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케이지에 관해 흥미로웠던 부분 몇 개를 인용한다.

"사람들은 케이지가 재능 있는 수많은 음악가에게 영향을 준 훌륭한 음악 철학자이지만, 그 자신은 훌륭한 작곡가가 아니었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내가 끌렸던 것은 그의 음악이지, 그의 이론이 아니다. 1958년, 독일의 다름슈타트에서 ... [그는] 흔히 볼 수 있었던 미국 출신의 현대 선사상가였다. 내가 케이지의 열성분자로 돌변한 것은 바로 그가 데이비드 튜더와 함께 개최했던 음악회 때문이다. ... 그의 수많은 제자와 젊은 친구들은 케이지의 세례를 받고 나서 더 선별적이며 미학적으로 변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유독 케이지만이 너절한 것들을 맽어낼 용기와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42-43쪽)

이 부분은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의 입장을 상기시킨다. 손택은 이 책에서 예술 그 자체를 해석학적 비평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재현의 문제를 끌고 들어온다. 손택은 여기서 '예술이 재현이 아니다'의 손을 들어주면서, 만약 재현일 경우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어버리는 괴상한 시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의 예술 작품은 그것의 내용"이고, "해석은 예술에 대한 지성의 복수"며, "비평은 예술작품에 봉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혹은 열렬히 사랑하거나.

백남준이 케이지의 이론보다 음악에 끌렸다는 말은, 케이지의 이론보다 음악 그 자체가 진짜라는 말로 풀이된다. 그것은 손택이 옹호하고자 했던 (더 이상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존재하는 그대로인 것'으로서의 예술, 재현하지 않는 즉 그린버그 같은 사람의 모더니즘에 의해 정식화된 '진정한' 존재, 천재로서의 예술가의 분신으로서의 예술, 매개 없이 그 자체로서 말을 걸어오는 무엇이다.

형식파괴자 백남준이 은밀하게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결국 미술은 미술이며, 어떠한 좋은 미술(예컨대 너절한 미술)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어떤 믿음 같은 것을 반증한다. 혹은 미술을 극단적으로 비미술화해버린 결과 미술이란 개념이 사라졌을 때의 어떤 무의미가 "텅빈 캔버스" 이상으로 공포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혹은 완벽히 비미술화된 어떤 것은 그 무엇도 아니라는 커먼센스에 기반된 관념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진정한'이란 수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진정한 것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예컨대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단수가 아닌 복수, 고정성이 아닌 유동성, 확실함이 아닌 불확실성이야말로 '진정한' 무엇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때 그 진정한 '무엇'은, 결국 똑같은 진정한 어떤 모습의 예술과도 같다. 궤변인가.

왜 이렇게 무리하게 과대?해석을 시도하냐. 이유는 나는 백남준이 단순히 반미학을 추구한 예술 파괴자, 앙팡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어쨋거나 저쨌거나 '예술'을 사유하고 창작한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뉘앙스를 그의 글에서 발견한다면 기록해두고 싶었다.

한편 흥미로웠던 점은 하나 더 있다. 존 케이지의 음악이 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양이 많아서 좋았다는 백남준의 평.

"1968년 경, 전자 서커스에서 열린 체스 음악회가 생각난다. 그는 체스를 두었는데, 체스판이 튜더가 조정하는 기계에 연결되어 있었다. 3년에 걸쳐 작곡하고, 반복적으로 연습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3시간 동안이나 그렇게 '훌륭한' 곡을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것이 즉흥적으로 진행되었다. . . . 4시간 동안 음악의 양탄자가 깔렸다. . . . 나는 사람들이 자연이나 우주를 받아들이듯 '나는 케이지를 받아들인다'라고 말했다. 엄청난 양이 우리가 '질'이라고 부르는 측정의 단위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있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는 '질'이라는 말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1. 훌륭하거나 혹은 형편 없거나: 비교급 형용사
  2. 다르다는 의미... 예를 들어 뮌스터의 치즈는 카망베르보다 더 좋거나 나쁠 수 있지만, A는 분명히 B와 다른 것이다.
  케이지의 음악에서 양의 중요성이 이러한 구분을 마비시킨다. 모래를 씹는 기분이라고 할까...케이지 이전이나 이후 그 어떤 예술가도 그렇게 완벽하게 장식지상주의, 출세지상주의, 최상주의를 넘어선 사람은 없었다. 케이지는 '질'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얼마든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곡할 수 있었다."(42-43쪽)

이 '양'에 대한 개념적 설명은 맥루언의 비율(ratio) 개념(혹은 부리요의 근접성 개념까지) 닮았다. '양'이란 것은 단지 비슷비슷한 단위들이 많고 적어짐에 따라 뭔가가 바뀌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뭐가 달라서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방식의 인식론은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질'적으로 가리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는 양적인 분류 체계 속에서 그라데이션된다.

로그/로그-라이크

옛날에 꽤 재밌게 했던 '풍래의 시렌'이란 게임이 갑자기 생각나서 검색해봤더니 이런 게임을 로그-라이크 게임이라고 하나 보다. 요즘 게임은 모두 세이브-다시 시작 기능이 탑제가 되어서 뭐랄까, 죽어도 다시 살아난달까, 아니 타임루프물에서처럼 다시 죽기 전 과거로 되물릴 수 있달까, 그런 안전빵 시간 감각인데 이런 로그-라이크 게임은 영원한 죽음 개념을 탑제해서 한 번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때문에 나도 '풍래의 시렌'을 플레이했을 때 꽤나 신중했던 기억이 있다.

게임적 시간이 꼭 끝나지 않는 순환루프일 필요는 없다. 이런 '인디 게임'으로 분류되는 카운터 게임도 존재한단 사실. 그러니까 게임도 게임 나름이다.

다음은 위키 자료들이다. 나무위키가 특히 놀랍다..-_-;

https://namu.wiki/w/%EB%A1%9C%EA%B7%B8%EB%9D%BC%EC%9D%B4%ED%81%AC

https://en.wikipedia.org/wiki/Rogue_(video_game)

https://en.wikipedia.org/wiki/Roguelike

https://ko.wikipedia.org/wiki/%EB%A1%9C%EA%B7%B8%EB%A5%98_%EA%B2%8C%EC%9E%84

http://nethack.byus.net/gnu4/bbs/board.php?bo_table=board

백남준, 노스텔지어는 피드백의 제곱근이다. (1930년-1960년-1990년) (1992. 9)

제목이 시사하듯이 백남준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곱절의 피드백과도 같다고 썼다. 그는 30년을 주기로 가정하며 90년대와 60년대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일단은 적으며 시작한다.

"30년이라는 기간을 예로 들어보자. // 지난 30년을 뒤돌아보면 60년대는 우리에게 비교적 가깝게 느껴진다. 그 당시 스타가 지금도 대부분 살아 있고, 여전히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 예전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도 있다.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것만큼 사람들의 예술적 취향이 달라지지는 않은 것이다."(35쪽)

하지만 60년대에서 본 30년대는 엄청나게 멀다고 말한다. 즉 과거로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우리는 당대의 사실과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며, 그런한, 피드백, 즉 정보의 순환 속에서 기존의 정보가 계속 다르게 갱신되는 프로토콜이 제곱근으로 가속화 된다고 보고 있다.

"반면 60년대에 서서 30년을 되돌아보면 심연처럼 멀어 보인다. 그 30년은 히틀러의 등장으로 시작되어 케네디 대통령의 선거운동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사이를 스탈린, 집단농장, 홀로코스트, 히로시마, 한국, 베를린, 아이젠하워의 자주노선이 차지하고 있다.
이 두 기간을 가르는 또 다른 심연이 있다. 바로 인쇄매체와 전자매체의 간격이다. 인쇄매체는 실제 일어난 일과 거의 정확한 이미지를 전달하지만, 전자매체는 그레타 가르보나 진저 로저스와 같은 당시 할리우드식 버전에 국한되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30년대를 독재와 경제공황의 시대가 아니라 버스비 버클리의 시대로 상상하며 자랐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1960년대를 다시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같은쪽)

상기 인용에서 90년대의 젊은이는 30년대를 (헐리우드식으로) 매우 다르게 인식한다. 그렇다면 90년대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60년대도 다시 짚어봐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30년대의 인쇄매체는 상대적으로 정확한 기록을 남기지만 60년대부터 전자매체는 헐리우드식 버전으로 남긴다고 하였다. 따라서 90년대의 젊은이들은 30년대를 헐리우드식으로 상상하며 자란다. (상기 인용에서 느껴지는 바는 백남준이 '헐리우드'에 관해 어떤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상대적으로 정확한 팩트가 있는 30년대도 현재 이렇게 왜곡 인식하는데 헐리우드 전자매체가 주름잡은 60년대 이후는 오죽하겠냐. 많은 기억의 변조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것--그리고 어딘가 그건 잘못됐다는 것.

여기서 그는 로버트 라우센버그를 거론한다. 라우센버그의 '9일밤'에서의 공연은 백남준이 보기에 대단했던 것 같다. 짧은 글의 많은 지면을 그 공연을 묘사하는 데 쓰고 있다. 하지만 포인트는 라우센버그가 그런 공연을 감당하기 위해 "광고를 해야 했다"는 것, 그래서 그가 혹독하게 비판받았다는 것.(36쪽) 그리곤 그 자신의 비슷한 경험담을 술회한다.

백남준이 티비랩에서 만든 실험물은 WNET이란 케이블 방송국을 통해 인기를 끌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영 TV로 중계되면서 나라 전체, 다시 말해 40억 시청자를 상대해야 했다."(같은쪽) 그때 백남준은 "그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다"(37쪽)고 회고하는데, 왜냐면 "예산이 우리 것보다 20배가 넘는 할리우드나 BBC의 프로그램을 주로 다루던 메디슨 가의 전문 광고업자를 고용했던 것이다."(같은쪽) 그래서 백남준은 자신의 프로그램이 "첫 방송 시리즈 이후 잊힐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같은쪽)

백남준은 많은 대중을 비디오아트로 끌어들이는 것에 성공했으며, 더욱 큰 성공을 위해 광고업을 끌어들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즉 지나고 보니 헐리우드와 손을 잡아선 안됐다.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은 백남준이 록펠러재단과 같은 기업과 비디오아트 국립방송을 창시하긴 했지만, 헐리우드 광고 같은 상업주의를 그 자체로 지지하진 않았단 사실이다. 즉, 그들과 손은 잡되 스스로를 동류로 포지셔닝하진 않았다.

여기까지가 비디오아트(아방가르드)-광고(상업방송) 간의 어떤 제휴와 실패를 말하고 있다면 마지막 단락은 약간 애매하게 붙어있다. 마치 내가 옳았다를 증명하는 것처럼, 헨리 겔트잘러란 미술평론가와의 저녁식사에서 나눈 다소 거북한 대화--즉 그녀가 비디오아트에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친 관점: "예술가는 여러가지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 자체는 어떤 미적 감각도 없어요. 기술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37쪽)--를 버젓이 쓴 뒤, 그녀가 70년대 NEA에서 비디오아트 분야 장학금을 지급했다고 다시 적으며 그녀의 과거 말을 비꼰다.

말하자면 비디오아트(아방가르드)-예술계(제도)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앞서 예술이 광고 쪽과 붙는 일에 백남준이 "실패"라며 거부반응을 보인다면, 반대로 예술계 쪽에서 비디오아트에 일방적인 거부권을 행사했던 사실에도 거북한 반응을 보인다. 종합해보면 백남준은 비디오아트가 텔레비전 광고가 아니라 결국 예술이며 상업주의에 저항해야 한단 소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고 과거를 회상해보니(노스텔지어) 얻어진 통찰이자 진실(피드백)이라고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편 그가 과거를 회상/비판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로 날아가서 당대를 비판하는 것과 같은 어조다. 즉 그 당대가 아니라 그 시간축을 뒤로 물려 아주 편하고 명백한 관점에서, 하지만 마치 당대에 있는 것처럼 비판한다. 나는 이런 방식이 꽤나 흥미롭게도 한데, 현재의 관점으로 역사가 다시 써진다는 점이 그렇다. (즉 또 다시 30년이 지난 후에 백남준의 관점이 다시 뒤집어질지도 모른다.) 마치 정말로 시간을 가역적인 것으로, 혹은 비디오를 타임머신 기계처럼 망상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의 최초에서 그가 "1950년 이전 예술가들은 추상적인 공간을 발견했다. // 1960년 이후 비디오 예술가들은 추상적 시간을 발견했다. // 아무 내용이 없는 시간을"이라고 썼던 이유처럼 보인다. 그리고 노스텔지어가 피드백의 제곱근이라고 썼던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보고 있는 연재 만화

블리치: 아아..노답 블리치. 언제부터인가 블리치는 '서사'라는 게 사라져버렸다. 작가가 장기연재하면서 소년만화에선 결국 서사가 필요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기도 하다. 남은 것은 캐릭터의 어떤 속성 간의 대결 구도 그 자체와 그 결과, 즉 누가 이겼고 누구에게 질 것이냐다. 마치 토너먼트 같다. 누가 누구와 대결을 할 것인지 대진표에 이미 다 나와있으며, 이 세계에서 우리가 원하고 또 파악할 수 있는 건 누가 이겨서 누구와 다음 경기를 가지며 결국 최종 승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토너먼트와 다른 점은 소년만화에선 이미 승자가 정해져있다는 것. 그것이 한층 이 게임을 따분하게 만든다. 서사가 사라져버린 만화에서 남은 것은 순간순간의 미학화다. 짧은 분량 안에서 중2병같은 허세 대사와 미형 캐릭터 작화를 반복하며 증명하는 바는 그 자신의 텅 빔 그 자체다.

일곱개의 대죄: 블리치와 비교했을 때 일단 이 작가는 배경을 그린다. 만화에서 풍경이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다. 예컨대 <아오이 호노오> 같은 드라마에서도 잠깐 나왔듯이, 학원물에선 중2병 같은 대사를 치는 캐릭터를 출연시키기 위해선 수십개의 책상과 의자를 그려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캐릭터는 진공상태 안에서 살게 되며 생명력을 잃게 된다. <블리치>가 캐릭터 묘사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그런 배경묘사를 게을리한다면 <일곱개의 대죄>는 심지어 캐릭터가 집중되는 컷일 때도 최소한의 배경을 그린다. 그런 면에서 일단 <일곱개의 대죄>가 훨씬 풍부한 세계관을 이미지로서 제공한다. 또한 검은색 흰색 비율이 적절해서 톤을 쓰지 않더라도 화면에서 풍부한 명암을 느낄 수 있다. <블리치>는 명암이 거의 흰색 검은색이다. 하지만 <일곱개의 대죄>는 여러가지 회색이 존재한다. 이런 점도 블리치보다 뛰어나다. 또한 <블리치>에 비해서 플롯이 꽉 짜여있다. <블리치>가 각 챕터가 거의 무관할 정도의 비개연성을 보여준다면, <일곱개의 대죄>는 (아직 시작?이어서 그런진 몰라도) 최초 시작부터 지금까지 각 등장인물의 현재편과 추억편이 흥미롭게 배열되며, 또 유기적으로 엮어져 있다. 그러니까 <블리치>가 전혀 무관한 작품을 세계관만 공유한 채 옴니버스식으로 엮여져 있다면, <일곱개의 대죄>는 각 챕터가 무관하면서도 유관하다. 물론 연재가 늘어지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블리치>는 거의 처음부터 설정이 계속 덧붙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지금의 부실함을 장기연재탓만으로만 돌리기엔 뭣하다. 나 블리치 까?

테라포마스: 별로 안 좋아하지만 불량식품 먹는 것처럼 그냥 본다.

나는 마리안네: <악의 꽃>으로 유명한 작가의 신작이다. 백합의 심리를 잘 표현하는 것 같은데, 꼭 그게 아니더라도 사춘기 시절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신기하게도 잘 포착한다.

열혈강호: 그냥 습관적으로 기대하며 습관적으로 본다. 무념무상.

원피스: 어느 순간 스테레오타입의 인물과 반복된 플롯과 연출에 질려서 감흥이 없다. 그냥 습관적으로 기대하면서 습관적으로 본다.

백도사(레진): 일주일에 한 번씩 무료로 풀리는 걸 보는데 감질난다.ㅠㅠ 뭔가 한국적 신화랄까, 그런 걸 차용한 것도 아닌데 도사, 홍길동 같은 이름만으로도 어쩐지 친숙해진달까 그런 느낌이 있다. 그리고 의외로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그정도로 세계관이나 설정이 치밀하며, 그림체나 연출, 구성도 웹툰임을 감안했을 때 썩 훌륭한 편이다.

잠자는 공주와 꿈꾸는 악마(레진): 아..이 만화는 확실히 만담형 만화다. 난 라노벨은 잘 모르지만 이 만화를 보면 아는 한도 내에서 니시오 이신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근데 그래서? 사실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 니시오 이신처럼 언어유희를 고급지게 하는 것도 아니며 캐릭터의 사상이나 세계관적 사상이 전연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키치류다. 그래도 일단 보긴 보는 중.

더블 캐스팅(레진): 키드갱으로 어린 나에게 인상을 남겼던 신영우 작가의 작품. 기본적인 구도는 키드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머코드도. 뭐랄까, 희안한 유머코드인데 극적 상황에서 뻔뻔하게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표현을 한달까. 여기에 대해선 나중에 한 번 더 생각해봐야겠다. 아무튼 재밌게 보고있는 만화.

초인(레진): <용비불패>의 문정후 작가가 어떤 스토리 작가와 함께 그리고 있다. 스토리 작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사나 연출이 <용비불패>스럽다. 아마 문정후 작가가 자기-스타일화를 많이 시키는듯. 딱히 재밌지도 안 재밌지도 않다. 그림은 웹툰으로 보기엔 너무 과하달까, 시커멓다. 손은 많이 갔지만 딱히 효과적인진 잘 모르겠다. 내가 <베르세르크> 같은 작품에서 느끼는 바와 비슷하다. 아,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다른 만화와 다르게 마지막에 항상 CJ E&M 로고가 달려있다. 여기서 제작비를 댔나 봄. 인기 있으면 영화화 하려나?

보쿠걸: 전형적인 TS물. 나로선 그닥 감흥이 없지만 캐릭터가 미형이고 그냥 레퍼런스 차원에서 챙겨보고 있다.

기타 등등: 던만추, 페어리테일, 빈란드사가, 킹덤 등등.. 그러고 보니 난 정말 소년만화 취향이구나. 쩝.

2015년 9월 7일 월요일

사사키 아타루, 이 치열한 무력을, (2012)

어제 오늘 해서 완독. 그러고보니 오랫만에 비미술 책을 읽었다. 사사키 아타루 읽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아직 책을 사보진 못했다고 하니 김형관 작가가 빌려줬다. 이 책은 대중강연이나 대담, 짧은 비평을 모아 놓은 앤솔로지라 진면목을 파악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같은 주 저서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지레짐작정도는 가능하다.

거칠게 분류하자면 그는 기본적으로 반헤겔주의자이자 니체주의자다. 곳곳에서 헤겔에 대한 존경심과 비아냥거림이 동시에 나오며, 반대로 니체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 또한 발견 가능하다. 그런한 전체나 총체로서의 진리보다는 개개인 안에서부터 출현하는 진리의 계기 같은 것에 더욱 관심을 둔다.

텍스트에 관한 절대적 긍정이랄까 그런 것도 발견된다. 그래서 데리다의 "텍스트 밖엔 아무 것도 없다"를 자신의 버전으로 더욱 밀고 나가서 '언어 바깥이야말로 우리가 언어 내부라고 생각해온 것이며, 바로 그 언어가 탄생하는 곳이다'고 말한다. 여기선 블량쇼 같은 사람이 참조되는데, 나는 철학도가 아닌 입장에서 블랑쇼나 데리다나 그 나물에 그 밥같아 보이며 그 말이 그 말 같아 보인다. 물론 그들만의 사정이 있겠지만 말이다.(1장 말이 태어난 곳)

311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 사사키 아타루를 뜨게 해준 테마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만. 그의 일관된 태도는 311 '이후'에 관한 모든 것에 관한 불편함이다. 즉 헤겔의 역사 철학이 그렇듯이 종언을 전제로 한 어떤 목적론적인 사상에 그는 반대한다. 그와 반대로 그는 원전 이후, 그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지, 그리고 누가 그렇게 했는지에 관한 어떤 불명확함과 어떤 진실(곧 죽음)에 대한 무력감만이 남았으며, 그런 한 311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이후'라는 담론은 거짓이란 것이다. 또한 종말을 기정사실화하며 휴거를 바라거나, 혹은 완전히 원전 피해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관한 생각을 말소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한 생각을 지속하며 결국 우리는 뭔가를, 역사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런 생각, 즉 '이후'란 담론에 관한 철학적 성찰은 대단히 빛난다는 생각했다. 세월호의 "잊지 않겠습니다"란 슬로건과도 일견 유사하단 생각도 했다. (6장 변혁을 향해, 이 치열한 무력을)

그의 미론이랄까, 그런 것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장은 아무래도 "<우리의 제정신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달라>를 요약한 기본 주기 21개"다. 이 글은 실러의 미적교육론에서 설명되는 예술의 혁명성이 오늘날 쓸모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글이며, 나아가 현실 사회에 실질적 영향력이 미미해 보이는 (어쩌면 서정적인) 예술의 존재를 그 자체로 혁명적으로 만들기 위한 글이다. 나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를 하자면 (쩝...) 그는 일단 먼저 17세기 보자르나 그리스의 테크네 개념을 언급하며 기존의 예술 개념을 무효로 돌린다. 이건 한편으로 근대 이후 쌓여온 비판을 포함한 현대적 예술개념의 전개과정을 무시하겠단 태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아무튼 그리곤 실러의 미적교육론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속류) 마르크스주의의 토대론을 비판한다. (아무래도 이런 프레임을 짜는 이유는 '미'의 정치성을 논하고 싶은데, 실질적 효과를 주장하는 만만한 호구가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실러의 미적교육론이 만개한 버전이 신자유주의일 수 있음을 이어서 지적하며 실러의 지지가 이 쪽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 것임을 명시한다. 그리곤 한편으로 그는 다시 계속해서 속류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며 토대와 상부의 '효과'를 창출하는 더욱 근본적인 무엇에 관해 이야기 한다. 그것은 (모든 근대성의 출발점으로 푸코가 지적한) "규율 권력" 개념이다. 그는 이것이 감성적인 것 안에 이성적인 것을 심는 방식이며 실러의 미적교육과 닮았음을 지적한다. 그리곤 그것의 역류(보텀업),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국가적 차원의 규율을 형성하는 기술인 실러적 의미의 예술 개념의 혁명성을 다시 꺼낸다. 결국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푸코의 근대적 "규율권력"은 감성을 이성화하는 미적교육의 방식이며, 이것은 (실러적 의미로서) 급진적인 방식으로도 충분히 사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규율권력의 급진적 버전이 바로 예술을 만드는 것이며, 나아가 스스로 미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왜 글을 쓰는지 아직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건 비판이 아니라 종종 이런 방식의 글쓰기와 마주치는데 진짜로 잘 모르겠다. 내가 마르크스나 알튀세, 쉴러, 푸코를 잘 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글 안에서만 보자면 속류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그리곤 거기에 대한 탈출구로 푸코와 알튀세가 물망에 오른다. 하지만 알튀세는 생략되고 푸코가 선택된다. 그리곤 푸코는 쉴러와의 비교를 통해 설명된다. 아니 쉴러를 옹호하는 것처럼 설명된다. 만약 내가 이런 테마로 글을 쓴다면 그냥 푸코 하나만 가지고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미적 인간이란게 '자기의 테크놀로지' 같은 것과 유사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지. 혹은 알튀세만로도 토대론 비판부터 시작해서 어떻게든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굳이 이 글에선 짧막짧막하게 여러가지 비슷한 다른시간대의 사상가들이 거론된다. 왜 굳이?--라고 생각했는데 독일 관념론에 관한 강의였나보다. orz

한편 미술학도로서 내가 이런 방식에 매력을 못느끼는 이유는 예술, 혹은 미술의 역사 안에서 여러겹으로 시도됐던 다양한 실천이 괄호쳐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런 방식은 역사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미적-인간-되기는 진정으로 미술사에서 시도된적이 없는가? 특히 20세기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 프로젝트(광범위하게 포함시키자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까지도)는 온전히 그런 취지에서 상이하게 작동된 것 아닌가 싶다. 따라서 사사키 아타루 방식의 예술 존재론의 혁명성은 사실 너무나 일반론이어서 아무 것도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의 머리 속에는 물론 다른 버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가 못 알아 들은 것일지도 모르고.) 그런한 미술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선 미학과 미술사의 어떠한 경계 지점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사키 아타루는 소설가이기도 한가 보다. ㅎ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국적 불명의 고답적 문체를 구사한다는데, 책에서 어떤 평론가에 따르면 소설인듯 하면서 소설이 아니고 미문인듯 하면서 미문도 아니고 사람 열받게 하는데 그래서 재미있고...그렇단다. 힙합 가사를 쓰는 사람이 진중하면 이렇게 된달까, 그런 느낌이다. 내 주변에도 몇몇 있는 인간형이다. 뭔가 덕지덕지 붙어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 그 모습은 꽤나 처량하게 보이는, 그런 하이브리드.

이렇게 이야기하면 까 같은데 그런 건 아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으며, 여러가지 의미에서 우리 세대의 지식인의 한 모델을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