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 운영 시기
1기 1907-25 문부성미술전람회, 18년 동안 총 12회
2기 1919-34 제국미술원미술전람회 총 15회 (23년 관동대지진으로 미개최)
3기 1937-43 문부성미술전람회, 총 6회
-> 1945년까지를 근대라고 보았을때 후반기에 해당
관전 설립 목적
1) 화단 통합
- 1890년대 : 수많은 미술단체 조직--구파(전통계승)와 신파(개혁)가 일본화-회화 분야에서 첨예하게 대립
==구파: 궁내성 중심 활동
==신파: 문부성 산하 도쿄미술학교 중심 활동
=> 결과적으로 문전을 중심으로 이권 다툼(심사위원 선정, 등수 결정 등 제도) 발생
2) 프랑스 살롱 모델 수입
- 1900년 만국박람회를 기해 문부성 관료 3명(마사키 나오히코, 후쿠하라 료지로, 오카다 료헤이)+오스트리아 공사(마키노 노부아키)가 만나 프랑스 살롱 형태 관전을 만드는 과제가 시급하다고 결론 -> 1906년 사이온지 긴모치 내각이 출범하고 마키노가 문부대신으로 임명되어 문전 개설 실현
- 마사키 나오히코: 1901년부터 도쿄미술학교 교장 30년 근무
- 후쿠하라 료지로: 3대 제국미술원장(1대는 모리 오가이 2대는 구로다 세이키)
- 마키노 노부아키: 이후 궁내대신, 내대신 (메이지유신 주역 오쿠보 도시미치의 차남, 구로다 세이키와 같은ㅇ 사쓰마 출신, 오카쿠라 덴신의 1년 후배) -> 개쩌는 인맥과 집안
3) 미술진흥
가) 고미술보호: 메이지유신 이후 불교배척운동으로 개판된 고미술씬의 관리
나) 식산흥업: 자포니즘의 유행에 따른 인기상품(공예)의 산업적 육성
다) 미술교육: 서양미술을 정착시키기 위한 문부성 노력(탈아입구). 1887년 도쿄미술학교 설립(고등교육)
전개
- 프랑스가 1863년 개혁을 통해 권력 집중된 아카데미에서 살롱과 미술학교를 분리해내려고 한다면 일본은 조금씩 신설된 제도를 제국예술원으로 통합
== 프랑스: 학사원>제3분과(문학과미술)->미술아카데미->대개혁(1863)제국특별미술학교 칙령(미술학교와 살롱을 미술아카데미와 분리)
== 일본: 미술학교->관전>제국미술원>제국예술원
- 왜 그렇게 미술제도를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 했을까?
== 자포니즘은 메이지시기(1868-1912) 전기간 걸쳐 존재했기 때문에 일본 미술제도가 자포니즘에 조준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사토 도신) -> 서양미술 개념 이식 자체가 자포니즘을 위한 수용일지도.
== 일본은 자포니즘을 공예가 아닌 미술로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음 -> 빈 견학을 통해 '순정미술'을 강화하기 위한 관전 설립
- 의외의 결과
관전이 시작되자마자 자포니즘 종식 * 유럽에서는 일본에서 아프리카나 중국으로 관심 이동 -> 일본에서는 1910년이후 자포니즘(서양)에서 국내와 아시아(동양)으로 정책축이 이동 -> 동양미술대관(동양미술사 구축), 조선미술전람회, 대만미술전람회, 대만총독부미술전람회 등 개최 -> 정책의 토대가 서양에서 동양으로 전환하고 파시즘 시기 대동아공영이라는 아시아정책으로 연결 <- 핵심에 문부성의 관전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