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0일 금요일

여름

여름이 싫은 이유가 있다면 그 중 하나는 긴바지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대부분 회사는 아직까지 남자직원에게 반바지 입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찾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짧은 미니스커트/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성들을 볼 때면 무엇보다 시원해보여 부럽다.

허벅지에 땀이 차 긴바지에 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기분이 점점 안 좋아진다. 바지가 무거워지니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그리고 급속도로 피곤해진다. 정장이라도 매일 입어야 한다면 정말 고욕일 것이다. 롯데갤러리를 그렇게 빨리 그만둔 이유도 여름이라는 시기와 정장에 구두 착용이라는 복식 조건이 영향을 많이 미쳤다.

2014년 6월 3일 화요일

굿, 삶과 죽음의 틈새를 대면케 하는 예술 – 미술가 박찬경 #1

http://blog.naver.com/itlara/10169885665

미술가 박찬경은 (FESTIVAL BOM, 3.22~4.18)에서 김금화 만신의 삶을 다룬 ‘판타지 다큐멘터리’ 『갈림길+아시아 고딕』(3.24~25, 극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을 선보였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서해안배연신굿의 보유자이기도 한 김금화는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17세에 외할머니로부터 내림굿을 받았다. 신과 인간 사이에 놓인 그녀의 삶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미신타파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한국전쟁 당시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으로써의 인간사를 감내해야 했다. 나라의 만신이 되어 백두산 천지에서 대동굿을, 독일 베를린에서의 윤이상 진혼굿을, 임진각에서 통일맞이굿을 할 때, 그것은 역사의 아픔을 달래는 대의(大義)로서의 진혼제였고, 그녀 자신에게는 개인사의 아픔을 달래는 스스로를 위한 위로이기도 했다. 박찬경은 『그날(2011)』에 김금화가 내림굿을 받던 1948년의 시간을, 『갈림길(2012)』에 한국전쟁과 포개진 그녀의 삶을 담았다. 영화 상영 후에 렉쳐 ‘아시아 고딕’을 통해 영화의 제작과정과 ‘한국적인 것’에 대한 자신만의 시론(試論)과 시론(詩論)을 관중과 함께 나눴다.
박찬경은 고고학적 노동을 무기로 삼는 미술가. 묻힌 것을 꺼내어 붓질로 털어낸 유물의 살비듬은 그의 손을 거쳐 작품이 된다. 큰 아픔을 안고 있기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묻힐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꺼내어 재인(再認)의 지평에 올려 놓는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102분·2010)는 안양을 소재로 도시성장에서 망각되고 왜곡된 역사적 시간을 쫓는 여덞 개의 에피소드로 엮었다. 계룡산의 신도안을 배경으로 한 『신도안』(45분·2008)은 일제 강점기와 근현대 속에서 전통 종교문화에 행해진 억압의 역사를 담았다. 이런 그의 작품이 놓인 화이트큐브로써의 갤러리는 미학적 성소보다는 망각된 역사를 호명하는 또 다른 기억과 기록의 장소가 된다.
박찬경은 어느 날 김금화의 자서전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와 마주쳤다. “무당으로서의 삶에 한국의 역사가 다 녹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기(傳記) 영화로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은 두 달에 걸쳐, 『갈림길』은 세 달에 걸쳐 제작되었다. 인간으로서의 무당이 신을 맞이하여 신적인 영역으로 들어설 때, 아우라의 막은 두터웠다. 김금화 만신의 인간사, 그와 맞물려 있는 신의 신화적 시공간을 영화에 담으며 박찬경은 그 경계의 떨림을 한치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가 겪었던 단단한 아우라의 시간과 체험을 모두 담아 김금화의 삶을 장편영화로 만드는 것을 계획으로 삼고 있다.
이제 영화를 따라 가보자. 『갈림길+아시아 고딕』이 상연되었던 『그날』의 시퀀스는 김금화의 재수굿으로 채워졌다. “카메라 대감님 잘 되게 해주소서.”
김금화 만신을 섭외하는데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에도 굿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사진 1). 거기에 출연했던 조성연 씨가 다리를 놓아주었어요. 조성연 씨는 김금화 만신 아래서 수학한 황해도굿 전수자이고 또 영화PD로도 활동합니다. 그런 그에게 김금화 만신의 삶을 영화로 제작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글쎄 왜 안 했을까요?‘ 하더군요. 너무 가까이 있는 존재이기에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판타지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눈길을 끕니다.
“독립영화·예술영화여도 관객에게 호기심을 끌어내야 하죠. 하지만 그보다는 영화가 무당과 무속에 관한 것이기에 종교적 상상과 환상이 묻어있다는 것을 암시하려 했습니다.”
‘판타지 다큐멘터리’로 담아내고 싶은 인물이 있습니까.
“전기(傳記)영화의 형식으로 홍대용·박지원·정약용 등과 같은 조선의 실학자들을 다루고 싶습니다. 유교적 지식을 가진 그들이 청나라를 통해 서양문물과 천문과학 등을 들여올 때, 머리 속에 떠오른 서양의 이미지, 뒤섞인 동서양의 판타지를 펼쳐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투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웃음).”
『그날』과 『갈림길』 모두 화면이 흑백과 컬러로 나눠집니다. 무구(巫具)같은 것은 컬러로 채색되었고 사람들의 모습은 흑백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피안으로써의 신의 세계는 컬러로, 현실적인 인간사는 흑백으로 그려진 듯 합니다.
“화면의 색을 많이 뺐습니다. 하지만 무구(巫具), 무복(巫服)이 지닌 울긋불긋한 ‘한국적인 화려함’은 살리려고 노력했죠. 시각적으로 전체를 원색으로 그리면 혼란스럽고, 오히려 무구와 무복의 강렬한 색채가 잘 드러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사진 2)
김금화의 내림굿 장면. 화면은 굿판에 걸린 무속화를 훑으면서 빠르게 반복되는 국악기의 선율을 들려준다. 선율이라기보다는 반복과 반복이 교직하며 만들어낸 몰입의 음향 같다. 작곡가 이태원이 이끄는 음악동인 ‘고물’의 소리다.
영화 내부에는 무악(巫樂)이 흐르고 있는데 새롭게 국악곡을 짜넣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태원 음악감독도 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굿의 절반이 음악인데···.’ 저는 영화의 극적인 면과 전체적인 리듬에 있어서 현장에 속해있는 음악만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지만 감정을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데는 음악의 힘이 강하죠. 그래서 음악이 빠진 영화를 보는 것은 힘듭니다. 김금화 만신이 인간문화재이고, 소재가 전통문화이기에 서양음악을 넣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시각적으로는 전통문화가 비춰지지만 청각적으로는 산뜻함과 현대적인 느낌을 추구하여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이태원 음악감독이 이런 느낌을 잘 제시하는 작곡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이태원 작곡가가 ‘개념음악가’라고 생각합니다. 『국악에 관한 세가지 논쟁』(2010.12.20-23, 웰콤씨어터) 등 근대를 거치면서 뒤틀어진 국악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음악회의 형식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작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요. 본인의 작업 또한 영화를 통한 역사 들춰내기라는 점에서 그런 면이 통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이태원 음악감독의 공연을 봤습니다. 뭐 그리 어렵게 하냐고 제가 뭐라 한 적도 있어요(웃음).”

그런데 이태원 작곡가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습니까.

“『신도안』을 제작할 때, 박찬욱 감독의 소개로 어어부프로젝트의 장영규 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작에 같이 참여했고요. 장영규 씨가 이태원 음악감독을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작년에 LIG아트홀이 기획한 『영화음악∞음악영화』(2011.10.27-29)에서 장영규 씨가 큐레이팅을 맡았는데 제가 이태원씨와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나봐요. 그래서 함께 『그날』을 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사진 3).”

이번 『그날』과 『갈림길』 제작 전에 특별한 마음가짐 같은 것이 있었습니까.

“굿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애도(哀悼)의 수단으로서의 영화, 혹은 애도 프로세스를 담지한 영화. 굿에서 느껴지는 종교적인 카타르시스가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의 느낌에 겹쳐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굿에서 느껴지는 희열감을 배가하기 위해 3D방식도 생각해 봤었습니다.”

굿은 가무악(歌舞樂)이 어우러진 입체적 연행입니다. 이런 입방체가 영화의 장(평)면으로 들어갈 때 입체성이 훼손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그래도 리얼리티에 있어 영화만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화면이 움직이지 않잖아요. 영화가 지닌 입체성은 시공간의 자유로운 운동성을 통해서 리얼리티에 가장 근접하게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퍼포먼스를 담은 영화(영상)가 그 퍼포먼스를 실연보다 더 입체적으로 재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사진 4).
본인이 생각하는 굿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일단 시각적으로는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하나하나가 다 정교합니다(사진 5). 무엇보다 굿에는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이 달라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돼지머리에 만 원짜리 지폐를 척척 붙이는 장면은 욕망에 대한 솔직하고 투명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작두를 탈 때는 모든 시간들이 성스러워집니다. 그런 성스러움이 속된 세계와 인간의 욕망을 투명하게 향해있어요. 못 먹어 죽은 자는 먹이고, 총각·처녀는 결혼시켜주고. 독특한 ‘날 것’의 세계가 매력적입니다.”
라라 / L A R A d a – Life is LARA! / www.lara.kr

『갈림길』, 역사가 남긴 익명적 존재와 죽음을 향한 소실점

김금화가 내림굿을 받던 1948년을 그린 『그날』에 이어 상영된 『갈림길』은 김금화가 겪은 한국전쟁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갈림길』에는 김금화 외에 갈림길에 선자들, 그 곳을 한번이라도 지나온 자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김금화와 함께 1998년에 임진각 통일맞이굿을 주최한 소설가 황석영도 등장한다.
김금화와 황석영은 통일맞이굿 당시를 증언한다. 김금화는 북쪽을 향해 있는 철조망을 향해 달려갔고, 황석영은 그곳에서 “통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김일성의 혼령과 마주쳤다고 한다. 영화는 (배우를 통해) 1·4 후퇴 당시 마을에 들어온 남쪽 치안유지대의 총부리 앞에서 굿을 하는 김금화를(사진 6), 그리고 남쪽으로 피난 온 김금화를 그려낸다. 인천의 어느 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면서 김금화는 심한 풍랑과 마주쳤다. 그녀는 사람으로 태어나 무당으로 죽기를 원하며 곧 시체가 될 자신의 몸에 무당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무구(巫具)를 몸에 감기도 한다.
그리고 재연과 증언 사이에 파주 적군묘지에서 진오귀굿을 행하는 장면이 삽입됐다(사진 7).『갈림길』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들, 괴물로서의 전쟁이 몰아쳐 죽어간 북한군들의 혼령이다. 죽어서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이들은 북과 가까운 남쪽에 묻혀 역사 속에 익명의 존재가 되어 한반도의 잘라진 허리를 맴돈다. 그들을 달래는 만신은 진오귀굿을 진행하다 울고불고 졸도한다. 산 자가 받아내는 죽은 자들의 역사(사진 8 ).
실향과 이방인, 이승과 저승에 걸쳐있는 김금화 만신의 모습은 마치 ‘경계인’같습니다.
“제목과 같이 김금화 만신의 삶 자체가 ‘갈림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저런 의미에서의 갈림길인 것이죠.”

김금화 만신의 삶을 그려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민간에 오랜 시간 존재해 온 무속신앙이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단 몇십 년 만에 미신으로 규정되고, 멀리 하게 되었나를 김금화 만신이라는 상징을 제시하면서 묻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문화 속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민족주의의 이면에는 토착적 문화에 대해 ‘쪽 팔려 하는’ 이상한 자기혐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미신타파라는 억압, 그것에 맞서 살아온 김금화 만신의 삶 자체는 인간의 실존이며 무속의 생존과정이기도 하죠.”

굿은 산자가 치르는 죽은 자를 위한 문화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죽음이 떠오릅니다. 영화의 소실점에 묘하게 포개져있는 ‘사점(死點)’에 시선이 잡혀 죽음과 직면할 때, 개인적으로 감상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저 같은 예술가가 함부로 할 말은 아니지만, 현대사회에서 죽음을 추방하려고 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생산의 도구이자 부를 창출하는 도구입니다. 노동과 생산과 반대에 있는 죽음은 당연 추방의 대상이죠. 예전에는 문화가 죽음과의 상생의 구조를 가졌습니다. 조상과 죽은 사람, 혹은 그들이 품은 원한이 산 자들의 삶 속에 떠돌아다녔고 이에 대한 상상도 발달했었죠. 하지만 오늘날에는 죽음을 통한 형이상학도 없어지고, 노동과 생산의 정반대에 대치시켜 놓음으로써 ‘추방’과 관리의 대상이 되었죠. 죽음에 관한 상상과 형이상학의 영역이 의료시장, 제약시장, 묘지시장 등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런 시장이 비대해지면서 죽음만이 아니라 삶도 가난해집니다.

레퀴엠 같은 것은 후기로 올수록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유보다는 ‘스타일로써의 레퀴엠’이 됩니다. 표현과 스타일의 수사로서의 죽음을 차용하는 예술도 많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렇게라도 죽음에 대한 사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이 단절되었다고 생각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의 과정을 진행합니다. 사후에 아무런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죽음 이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을 뿐이지 사실 단절된 것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불연속적이면서도 연속된 세계입니다.”
화면 속 파주 적군묘지. 진오귀굿이 진행되는 동안 무당의 눈물과 통곡은 짙어진다. 마르크스가『자본론』에서 말한 “우리는 산 것만이 아니라 또한 죽은 것 때문에 고통 받는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땅이 빚어낸 고통의 역사에서 고집스레 사라지길 거부하는, 배회하는 영혼들. 그 익명화된 이름을 만신은 눈물과 통곡으로 하나하나 불러주고 있었다(사진 9). 그런 순간을 지나는 무당의 고통은 어떻게든, 어떤 형식으로든 우리가 겪은 역사의 고통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윽고 그녀는 적군묘지의 한 복판을 날뛰다, 쓰러진다. 중간에 카메라는 쨍한 햇볕을 비춘다. 화면을 할퀴는 듯한 가야금 소리가 들리고, 죽음과 역사의 밑구녕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영화는 아니, 이 땅의 역사는 지켜보기 힘드니 허리 한번 펴고 하늘 한번 쳐다보며 숨돌리라고 권하는 것 같다.
『갈림길』을 제작하면서 기억에 남는 해프닝 혹은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파주 적군묘지에서 촬영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묘지에 가면 어떤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굿을 하는데 강한 에너지들이 엉기는 것이죠. 묘지에 담긴 역사의 은유들이 굿판의 에너지와 감기니 그 현장을 오랜 시간 지켜봐야 하는 저로써는 감당이 안 되더군요.”

김금화 만신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표정이 밝지 않으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잘못된 것이 있나요?“ 여쭈었더니 “아니, 우리가 잘 못해서”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영화 속에 당신께서 행한 굿이 흡족하지 않았나봅니다. “굿을 좀 더 잘 할 걸”이라고 말씀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편집자 주
만신 만신은 한자를 빌려 ‘萬神’이라 쓰기도 하는데 보통 여자 무당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만신이란 단어는 굿판에서 자주 등장한다. 예로 만신말명이라 하면 무조(巫祖)를 의미하는데 무당을 뜻하는 만신과 조상을 의미하는 말명이 합쳐진 것이다.
내림굿 무병(巫病)을 앓거나 몸에 신기(神氣)가 있는 사람에게 신을 내리게 하고 신을 받는 굿. ‘신굿’, ‘신명굿’, ‘명두굿’, ‘강신제’라고 부르기도 한다.대동굿 지역 수호신인 당신(堂神)을 모셔놓고 마을의 평안과 생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굿으로 황해도 해주·옹진·연평도와 평안도 지역에서 성행하였다.진혼굿 망자의 혼을 달래고 좋은 곳으로 천도하기 위한 굿.시론 試論 시험 삼아 해 보는 의론.시론 詩論 시에 대한 이론. 또는 그 평론.시퀀스 Sequence 특정 상황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묘사하는 영상 단락 구분. 몇 개의 신(scene)이 한 시퀀스를 이룬다. 신은 한 개 이상의 쇼트(shot)가 이룬 장면. 다시 말해 쇼트가 신을 이루고 신이 시퀀스를 이룬다.재수굿 집안의 안녕함과 재복 그리고 자손의 창성, 가족의 수복을 비는 무속의례.
무구 무당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도구. 신ㆍ칼ㆍ작두ㆍ방울ㆍ부채 따위의 도구와, 장구ㆍ자바라 따위의 악기가 있다.
무복 무당이 굿을 할 때 입는 옷.
국악에 관한 세 가지 논쟁 이태원이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음악동인 고물의 뮤직다큐멘터리 작품. 국악과 관련한 사회적, 창작적 측면에서 비롯되는 논쟁거리를 던지고 국악의 패러다임을 논한다.
진오귀굿 죽은이의 한을 씻기고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해 망자의 가족이 무당을 불러 벌이는 굿으로 씻김굿과 같은 말이다



[인터뷰]굿, 삶과 죽음의 틈새를 대면케 하는 예술 – 미술가 박찬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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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삶과 죽음의 틈새를 대면케 하는 예술 – 미술가 박찬경 #2
By 송 현민 (Song, Hyun-min) on November 13, 2012


‘아시아 고딕’, 한국적인 것에 대한 상상력

『갈림길』 상영 이후 박찬경은 제작과정과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렉쳐를 가졌다. 박찬경은 현대미술가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의 작품을 빌려와 굿에서 느낀 종교적 숭고의 감정을 말했다(사진 10). 정선의 진경산수화의 미학을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 19세기 서구 낭만주의의 시선과 개념을 빌려온 ‘한국적 낭만주의’, 이와 같은 선상에 있는 ‘아시아 고딕’ 등 개념적 조어(造語)을 설명하기도 했다. 중국의 감독 호금전(1931~1997)과 태국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1970~)이 만든 ‘오늘날의 영화’에 차용된 ‘전통적인 이미지’를 예로 들며, 전통의 현대화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는 각 국의 ‘전통활용법’을 논하기도 했다.
『그날』과 『갈림길』이라는 영화의 건축물을 지었던 설계도를 공개하면서도 박찬경은 본인 영화의 ‘심장’은 죽음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강조한다. 파주 적군묘지, 죽은 자 위에 또 죽은 자가 묻히고, 묻히면서 망각된 죽음과 역사는 결국 산자들의 삶을 위한 것이라며 렉쳐는 마무리되었다.

강연을 재밌게 보았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를 이끈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 등의 그림이 굿을 소재로 한 영화에 영감을 주고 활용되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보통 이런 과정을 거쳐 구도를 잡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이죠. 카메라 앵글을 잡을 때, 어떠한 그림이 떠오를 뿐이지 그림과 촬영 장면을 일대일로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대신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게 됩니다. 가끔 의식적으로 그렇게 선정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사진 11과 12).”





보통은 ‘우리 것’을 보여주는 작품에 ‘우리 것’만 담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동서양의 구분 없이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숭고의 감정이라고 할 때, 이것은 동서양 구분 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인데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을 프리드리히와 진경산수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사진 13과 14).”





박찬경은 서양미술사의 한 축을 이룬 19세기 낭만주의와 진경산수화의 교차지점에서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감정은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적 낭만주의’라는 그만의 조어(造語)가 가능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외래의 개념과 용어를 우리 문화에 끌어오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저는 남의 것처럼 되어 있는 ‘우리 것’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우리 것’보다 더 친숙한 서양의 용어와 개념을 가져와 우리의 전통문화를 바라보며 다가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괜찮다’는 대답에 내재된 위험성 같은 것은 없을까요. 예를 들면, 우리의 것을 그들의 시선으로 재단하는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문제도 걸릴 텐데요.
“위험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위험성을 너무 두려워하면 안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값싼 오리엔탈리즘들은 물론 문화를 저해시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담론의 비판이 두려워 저와 같은 시도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월드뮤직은 민족음악의 고유성, 그리고 그것의 보편화를 위해 전 지구적으로 음악의 유통을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시선과 구미에 맞췄다는 점에서 비판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의 이런 작업과 비교가 되지는 않겠지만 김수영 시인은 『거대한 뿌리』에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과 비슷한 차원인거 같아요. 지금 전통은 너무 멀리 있기에 어떤 형태로든지의 접근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인들이나 예술가들이 실제로 오리엔탈리즘담론 비판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예 전통문화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것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툴이라면 우리의 것이 아니어도 응용하여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창하는 ‘한국적 낭만주의’ ‘아시아 고딕’은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고딕’에서 ‘고딕’ 또한 18-19세기 서구에서 유행한 ‘네오-고딕’ 문학사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고딕은 산업사회에 대한 좌절감, 과학기술에 대한 불안감, 자연에 대한 깊은 감정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감정이 서양에만 있지는 않았잖아요. 동양과 서양의 구분을 떠나 어디에나, 어느 시대에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죠. 우리의 문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그런 툴을 가져다가 우리의 것을 더 잘 볼 수 있다면 못 쓸 이유가 뭐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악계에서 현대화라는 명목 하에 뿌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창작국악은 이제 상품으로 유통되기도 합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전통문화·민족문화를 응용·변용한 작품들은 사회참여적인 모습을 강하게 띠었다면, 현대화되는 오늘날의 전통문화는 이런 정신보다는 스타일과 상품화에 대한 추구를 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상업화와 상품화는 문제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상품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예술의 기능과 역할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죠. 예술에서 산업의 색채를 벗겨내야 한다는 것은 편협한 사고인거 같습니다. 산업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그 안에서 좋은 예술을 할 수 있고, 싸움과 투쟁이 가능합니다. 아마 1970년대와 1980년대처럼 전퉁문화가 사회참여의 도구로 활용되는 시기가 또 올 것입니다. 정치적인 운동이나 사회의 변혁이 새로운 문화의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거니까요. 그럴 때 그런 정신이 생기고, 지속되다가 변화되는 시대에 맞춰 또 다른 변주를 만들 것입니다.”

라라 / L A R A d a – Life is LARA! / www.lara.kr
예술의 웰빙을 위하여
박찬경은 자신만의 작은 우주, 미술가(家)에 머물러 이미지의 집을 짓고, 다시 미술가(街)라는 길위에 올라 끊임없이 걷는다. 그 걸음은 미술과 세상, 미술과 삶에 수많은 발자국을 남기고 뚜렷한 길을 낸다. 이 땅의 미술가들의 보편적 행복을 위해 수많은 길과 교차로를 만들고, 보고 보이는 것을 빚어내는 이들을 그곳으로 불러 모은다. 2004년, 공사가 중단된 흉물스럽게 방치된 서울 목동 예술인회관 점거 퍼포먼스를 했던 것도, 『국제전시, 문화 세계화의 한국적 굴절과 전유』, 『한국미술의 ‘비판성’과 작가의 ‘관심’-민중미술과 현재』와 같은 미술담론에 관한 논문을 꾸준히 생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무엇보다 영화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표현에 있어 사진, 영화, 교육,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글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합니다.
“저의 작업은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향해 있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예쁘다’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풍부한 이미지입니다. 현상의 핵심을 찌르는 이미지를 얻고 싶은 욕망이 늘 있어요. 영화 한편 다 보고 난 뒤에 전체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장면을 기억하잖아요. 그렇게 기억에 맺히는 ‘그림’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겠죠.

만약 미술을 안 했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습니까.
“아마 영화를 일찍 더 만들었지 않았나 싶어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습니다. 주로 무엇을 가르칩니까.
“요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실기수업을 맡고 있습니다. 교육의 현장에서 난점을 많이 느낍니다.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매번 뿜어내는 총체적인 변화와 자유인데 무의식적으로 규범과 과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예술이 생기있게 나오는 경우가 드뭅니다. 단지 예술이 나 자신, 나의 삶과는 별개로 저기 있는데 어떻게 다가갈까를 주로 고민하는 것 같아요.”

작업의 대상이 되는 근현대의 시간층은 본인의 삶을 이루는 한 지반이면서도,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삶을 이루고 있는 지반이기도 합니다. 본인의 작품을 보는 학생들의 반응과 호응이 궁금합니다.
“학생들이 오히려 제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거 같습니다. 달리 생각해 본다면 제가 작품에서 제시하는 외래문화 수용의 문제는 미술(교육)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서양예술의 내용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과 박물관 제도와 경영방식, 시장, 비평과 저널 등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뼈대를 갖추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한국예술의 제도, 제도가 빚어낸 복합체를 믿지 말라고 해요. 그들은 몇백년 동안 쌓아온 전통 속에서 그것이 서로 맞물리면서 구축한 구조가 있는데 우리는 형태만 만들었을 뿐 실제로 그들의 구조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걸 깨고 다른 것을 하자기보다는 그런 것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고, 학생들에게도 그런 불신의 자세를 갖도록 합니다.”

문화부장관이 된다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문화부 장관이 된다면’ 예술가들의 복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겠습니다. 지금 문화예술 관련 기금이 작업의 성향과 장르에 대한 고려 없이 배정됩니다. 전체예산의 1%에 해당되는 문화예술 예산 중 1% 안에서도 실제적인 창작에 대한 지원은 얼마 되지 안 됩니다. 어느 지자체나 정부나 문화예술을 존중한다고 하고, 문화도시를 표방하지 않는 지자체가 없는데 참 모순인거죠.”

본인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너무 어려운데요. 아름다움이란 유토피아와 관계된다고 생각합니다. 유토피아는 때로는 위험하기도 해요. 그 안에 내재된 정치적인 것들이 잘못 빚어지면 파시즘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그러나 상상을 정치와 자본에 빼앗긴 시대에 예술에서마저 그런 상상을 하지 않는다면 끔찍할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유토피아를 상상하기위한 도구라고도 볼 수 있겠죠.”

미술인으로써 국악인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미술작품이 있습니까. 혹은 관계된 그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박생광, 민정기, 오윤 등의 그림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사진 15, 16, 17). 또한 김지하 시인의 일관된 관심, 즉 아시아의 정체성이 어떻게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번쯤 짚어 봐야하는 중요한 사상가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최인훈, 김성동, 황석영 등의 작품에 나타나는 전통적인 소재들과 민담 등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박찬경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국악에 관한 직접적인 이야기가 중심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또한 그를 향한 질문에 ‘국악’이라는 단어를 얹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박찬경의 작품과 답변은 국악의 역사 속에 있는 명암의 ‘갈림길’을 떠올리게 했고, 이내 국악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가동시켰다. 본 인터뷰의 소실점은 여기에 맞춰지기를 바랄 뿐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살펴본 그의 작품들과 에서 발표한 『갈림길+아시아 고딕』을 통해 그의 이름은 필자에게 ‘찬·경(鏡)’ 즉, 차가운(찬) 거울처럼 느껴졌다. 그의 예술은 이 땅의 역사(史)에 익명으로 죽어간 것(死)을 비추는 거울이며 역으로 죽음(死)의 은유를 통해 산 자들의 역사(史)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언어유희에 담긴 은유를 고수하기로 했다.
그런 점에서 박찬경의 예술은 반성의 기술을 담고 있다. 그 반성의 기술이 근대화라는 다리를 건너온, 아니 아직 도착지점에 당도하지 못한 오늘날의 국악이 고개를 내밀어 취해야 할 요소라는 생각이 인터뷰를 정리하는 지금, 아득히 밀려온다.

편집자 주
오리엔탈리즘 원래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서 나타난 동방취미(東方趣味)의 경향을 나타냈던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제국주의적 지배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박찬경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1997년부터 <블랙박스 냉전 이미지의 기억>(1997), <세트>(2000), <파워통로>(2004), <비행>(2005), <신도안>(2008), <그날>(2011)과 <갈림길>(2012) 등을 발표했다. 1997년 금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쌈지아트스페이스, REDCAT, Atelier Hermes, PKM 갤러리, Akademie Schloss Solitude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04년 에르메스 미술상을 수상했으며,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2010)로 전주영화제 한국장편부문 대상을, <파란만장>(2011)으로 2011년 베를린영화제 단편부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 인터뷰를 진행하는 데 도움을 준 FESTIVAL BOM의 성민경 팀장님, LIG ART HALL의 박은영 매니저님, 그리고 BOL PICTURE의 김민경 PD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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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터뷰]굿, 삶과 죽음의 틈새를 대면케 하는 예술 – 미술가 박찬경 #2|작성자 라라

박찬경 정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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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_Flying>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전후 최초 남북 직항로의 개설을 소재로 한 비디오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남한 대표단을 태운 비행기 안에서 항공 촬영된 미방영 방송 소스를 재편집하였다. 이 비디오에는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가 석방된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이 견우직녀의 설화를 소재로 작곡한 <더블 콘체르토>가 사용되었다. 윤이상 선생에 대한 헌사이기도 한 몽환적 비디오를 통해, 탈냉전과 냉전, 전쟁과 평화,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의 기묘한 관계가 드러난다. <독일로 간 사람들(2002)>은 전후 1960년대 국내의 암담한 상황에서 독일에 광부, 간호사로 갔던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시리즈작업으로, 국내에서는 사진집이 출간된 바 있다. 이 밖에 사진과 풍경에 관한 비평적인 신작이 소개되며 <파워통로> 등의 구작도 함께 전시된다.

2014년 5월 24일 토요일

이미지의 시대

이미지..강력하고도 취약한..어쩔꼬.

2014년 5월 15일 목요일

공부와 마이 목과 허리와의 관계

목과 허리가 우리하게 아픈지 좀 오래됐는데, 물어보니 글쓰거나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은 하나 같이 이 고통을 호소한다. 그렇다고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읽으면 어느새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고개를 바짝 들고 읽으려면 책도 그만큼 들어야 하기 때문에 팔이 아파서 안된다. 인류의 뇌는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만, 몸은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아이고..ㅠ

2014년 5월 8일 목요일

FEEDBACK 마니페스토

  1. FEEDBACK. Don’t produce art or art history by making a “new” move in the game of aesthetics you learned in school. Assess the image ecology you live in and respond to it. Learn the system and counter it – make noise. Practice eco-formalism.
  2. CREATE A VIRUS. How is your image going to circulate? Use the resources of the “art world” as a base of operations, but don’t remain there. Use images to build publics.
  3. LOSE YOUR IDENTITY. Don’t believe that you’re a piece of property, a “gay man” or an “African American” whose “subject position” is the product of market research. Use icons opportunistically, and share them with like-minded people. Make an avatar!
  4. Imagine modes of art and art history that function as political science. Stop pretending to subvert commodification by demonstrating what everyone knows – that capital is everywhere. SEIZE THE WORLD AS A READYMADE and BREAK ITS CIRCU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