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9일 목요일

Figurative painting

구상과 추상 중 하나를 굳이 선택하라면 나는 구상 그림이 더 좋다. 구상과 추상이 적절하게 섞여져 있는 게 좋겠지만 그럼에도 구상적인 면이 강하면서 추상적인 면도 테크니컬리 도와주는 그림이 좋다. 누구나 좋아하는 화가로 말하자면 루시앙 프로이트 같은 자의 그림이다.

어느정도 이론적 입장이란 게 생기면서는 구상이 가지는 정치적 위치성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나치가 아방가르드를 퇴폐라고 규정했던 건 지나치게 추상화되어 민중이 알아먹을 수 없는 대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스탈린 치하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나오게 된 이유도 비슷하다. 우리는 이런 미술을 무턱대고 비판하는 법부터 배웠다. 하지만 극소수에 의해서만 작동되는 미술이 대단해봤자 뭐가 어떻단 말인가. 오히려 미술의 역능이 어떤 계기를 통해 발휘되는지 잘 알아본 쪽은 이쪽이다. 그런 면에서 아방가르드는 시작부터 판을 다시 짜야할지도 모른다. 

요즘엔 리터러시란 말을 많이 쓴다. 아바가르드는 자신의 리터러시로 사람들의 고유한 리터러시를 깨부수려고 했다. 나잘난 맛에 살았다는 거다. 하지만 사람들의 리터러시가 얼마나 다른 층위에 있는지 미술은 별로 안 궁금해왔다. 오히려 미술이 사람들의 리터러시를…

2021년 8월 18일 수요일

윤리적 취향

열심히 생각해서 무슨일을 하는 것과 그냥 해도 무슨 일이 되는 것의 차이를 모든 사람이 경험해봤을 것이다. 생각해서 하지 않아도 그냥 생긴대로 했는데 뭐가 되는 것. 후자의 그것을 우리는 보통 천재라고 부른다. 

천재란 개념은 판단력비판에 나온다.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타고 나서 그가 하는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천재가 하는 것이 말하자면 취미판단, 심미적 즐거움의 보편적 영역을 구현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나이가 먹으면 그렇게 된다는 썰이 있다. 공자가 70세가 되면 종심이라고 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학과 윤리가 만난다.

추구해야 할 미학이 있을까? 반대로 추구하지 않아야 할 미학이 있을까? 좀 애매하다. 미학에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잘 없는 거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예술은?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 (2015-6)

탈레반 생각도 나고.. 요즘 시국에 재밌게 시청했다.

2021년 8월 17일 화요일

주말 동안 본

1. 에반게리온 3.0+1.1

감개무량한 약 3 decades의 마무리. 신지가 커버린 모습이 내 모습과 닮았단 생각을 했다. (에반게리온을 처음 봤을 때 나도 신지와 같은 고등학생이었다.) 건너뛰고 결말… 레이도 아니고 아스카도 아니고 마리와 애인 사이가 되고 거기엔 아무런 에피소드가 없다. 아스카가 맨날 카메라 들고다니던 찌질이랑 14년동안 동거했단 이야기도 그냥 한 번 정보로만 나온다. 그냥 무심하게 특별하지도 않게 주목할 필요도 없이 그냥 그런 것이다. 에반게리온의 마무리가 제대로 된 연애로 끝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결국 사랑.

2. 블랙위도우

사실 별 기대없이 봤는데 재밌게 봤다. 스칼렛 요한슨은 별로 좋아하는 캐릭이 아닌데, 그 리틀 드러머 걸에 나온 여주가 차세대로 등장하면서 좀 흥미로워졌다. 약간 히어로물의 설정을 빼면 가족드라마인데, 미국 보통 가정의 모습(?)일 법한 상황이 꽁트처럼 약간 뒤틀려 들어가 있다. 그런 연출이 좀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쫌 단순한데 그런 느낌도 들고. 

3. 천공침공

부산집에 돌아와 적적해서 틀어놨던 걸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몰아서 봤다. 그덕에 오늘 아침엔 지각.. 알람 소리가 안 들렸는데 내가 끈 건지 알람이 안 울린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생각보다 신선한 설정의 베틀로얄물이다. 요즘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모든 게 게임적 설정이다. 능력도 성장하는 게 아니라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다운로드 받고 뭐 그런 식. 세계가 이렇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계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마 메타버스적 세계관이 점차 도래하면 후자와 전자가 합쳐지겠지. 아무튼 요즘 나오는 애니의 병폐(모에, 써비스씬)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참을만한 정도에, 생각보다 정교한 설정과 캐릭터성 때문에 끝까지 봄.

4. 암살교실

조금정도 인기를 끈 만화인데 유튜브에서 전편 요약해주는 영상을 봤다. 나름 특이한 소재에 학교 비판이 섞여 있는, 보기 드문 작업이란 생각.

홍혜은 글의 반응의 반응

나는 홍성담의 <세월 오월>, 이구영의 <더러운 잠>을 지지하는 것 만큼 홍혜은의 글도 지지할 수 있다. 모두 이미지와 신체의 어떤 특징을 연결시켰다. 이걸 파시즘이라고 우려한다면 차라리 집에 까스랜지 불 꺼졌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권력의 이미지를 조롱하는 건 그리 새롭지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도미에의 가르강튀아를 당장 검색해보라. 어떤 소수자성 때문에 권력의 이미지를 비판하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웃기다. 똥이 무서워서 된장 못 담그랴. 대통령이자 여성인 박근혜는 박근혜다. 통합되어 있는 걸 갈라서 이야기하기보단 다른 것이 왜 통합되어 있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2021년 8월 10일 화요일

분위기

최근 내가 회사에서 가장 열심히 한 건 도슨트교육이다. 기존에 행정 주사가 자원봉사자 수준으로 관리하던 도슨트를 이어 받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규칙도 만들고 교육도 진행했다. 뽑아 놓기만 하고 제대로 된 전시에 관한 교육과 프로그램화 된 스크립트 작성 시간이 없다보니 주먹구구식으로 자기네들끼리 그룹 지어서 스터디하고 마지막에 스크립트를 각 전시별 학예사에게 검수받은 후 동일한 스크립트를 달달 외우는 식이었다. 이들이 불만이 안 생기겠나.

아직 15명 남짓 되는 도슨트 선생님들을 데리고 현대미술에 대한 이런 저런 강의를 듣고 도슨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주 모이고 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수준과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스크립트를 짜고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다보니 시간과 장소가 많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도슨트실이 필요해 관장에게 요구했더니, 잠깐 쓰는 거 가지고 공간을 내주기 아깝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도슨트가 귀찮고, 내년엔 가능하면 전문 전시해설사 용역을 쓰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서울시립은 보니깐 도슨트대회인지 뭔지 하는 걸 한다. 최소 도슨트를 우리 가족으로 본다는 거다. 임근준은 그걸 봤는지 최근 블로그에 비슷한 글을 올렸다. 맞는 말이다. 도슨트는 적극적인 시민과 관객 참여의 공간이다. 그런데 여기는 부외자다. 쓸데없이 나서서 상전노릇하는 좆문가 민원 집단이다. 뭘 열심히 하는 걸 알아주진 못해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뭐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다보니 꺾이는 기분이 든다. 뭘 열심히 하려고 들면 자꾸 불려가서 왜그러는지 말해보라고 한다. 이유를 말해주는 것도 지친다. 그렇다고 제대로 듣지도 않는다. 이들은 내가 말하는 가운데 나의 빈틈만 찾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미술관은 전시만 하는 곳이 아니다. 공무원들의 직장만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미술관은 공무원의 직장이고 관객은 무지한 사람들이고 도슨트는 필요에 따라 이용했다 버렸다 하는 사람들이고 학예사는 좆도 모르는 병신들 주제에 뭐라도 되는듯 지식인 행세나 하고 전시는 대안공간보다 못한 것을 몇억씩 들여서 만들었다 부셨다. 그런 분위기 속에 있다보니 무언가 시간이 뒤로 가는 기분을 자꾸 받게 된다. 자기보존을 위한 격렬하지만 정적인, 기어 중립으로 놓고 풀악셀 밟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갑갑하다. 그래도 해야지 뭐 별 수 있나.

2021년 8월 6일 금요일

신지승

이번 인제 여행에서 신지승을 만났다. 몇 가지 메모.

1. 마을영화 제작법

영화를 만들면서 마을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이건 마을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해서 인심을 잃어버리면 마을영화 자체를 찍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최소한의 개입은 필요충분조건일 수밖에 없다. 마을에 이벤트가 있다면 감독은 쏜살같이 달려가 양해를 구하고 약간의 구성을 가미해 시퀀스를 만든다.

2. 작은 마음

신지승은 참 작은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은 것 큰 것 가리지 않고 분노도 잘 하고 상처도 잘 받는다. 너무 깨알 같은데 그게 영화에서잘 나타난다. 되게 그 깨알 같음이 의미없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홍상수식 ‘아무말 대잔치’가 아니라, 뭐랄까 아이고 모르겠다. 암튼 웃기지도 않고 어떤 의도도 있어 보이지 않는 그냥 무심한 일상이 거기에 있다. 극강의 클리셰? 대충 딱딱한 똥은 그래도 괜찮은데 휴지에 묻어 있는 똥이나 어디 발라져 짓이겨져 있는 똥은 너무 더러워서 못참는..? 아이고 모르겠다. 표현이 안 된다. 그것보단 미술적 표현이 낫겠다. 뒤샹은 레디메이드란 개념에 만족하지 않고 레디메이드 에이드란 개념도 만들고 여러가지 만들었다. 그 후예 중 조지 브레히트는 lamp event란 작업을 위해 레디메이드-액션이란 걸 했다. 레디메이드-액션은 조지 마키우나스가 한 말이다. 아무튼 일상에서 늘상 하는 행동을 레디메이드로 가져와서 그냥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허무한 작업이다. 이렇게 내가 레퍼런스로 뭔갈 가져와서 신지승의 이미지가 있어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진짜 아무 의미없어 보인다. 일상을 너무 무심하게 대충 찍었달까. 그냥 그대로 가져왔달까. 이 지점에서 좀 토할 것 같달까, 왜? 그게 너무나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클리셰 중의 클리셰여서?  아무튼 그런 느낌을 받았다. 신지승이 여기서 감독의 시대는 갔다라고 했다. (때때로 모순적임) 신지승의 로망은 아마도 마을의 삶이 그대로 영화가 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하는 건 영화적 삶이다. 그게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 아무튼 신지승은 왜 그렇게 클리셰를 가지고 오느냐 그건 작은 마음과 통한다고 본다. 

3. 극영화

신지승의 자부심은 마을사람들과 극영화를 찍는다는 거다. 그러니까 진지한 영화라는 거다. 자신은 감독이다. 영화감독. 이런 식의 작업에서 이런 프레이밍은 보기 드문 것이다. 보통 감독은 낮은 자세로 감독이란 위치성에 대해 의식하며, 마을사람들을 우쭈쭈 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작업을 해나간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그렇다. 소셜프랙티스로 가면 너무 다양해서 이건 전통적 장르적 규정이 와해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신지승은 완고하게 극영화를 추구하는 영화감독이다. 등장인물은 마을사람이지만 연기를 한다. 그게 자신인지 타인인지 모르는 경계에서. 감독은 내 위대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이들을 진지한 배우로 본다. 영화인들이 보기에 신지승은 진지한 영화 감독이 아니다. 당연히 등장 인물도 배우로 보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어떤 종류의 포인트가 있어 보인다. +  발터 벤야민, <모스크바 일기>, 러시아 연극에 관한 대목 참조할 것.

4. 마을의 영화관

대부도 주민의 꿈은 현대미술가가 뭐 패총으로 뭘 하고 비닐봉다리를 하늘에 날려보고 그런 게 아니라 내 자식이 안산에 가서 늦게까지 CGV에서 영화보고 버스 끊겨서 돌아오지 못해 차로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대부도에도 영화관 하나 만들어지는 거다. 신지승이 마을에 영화관을 튼다는 건 약간 이런 맥락이 있다.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신지승은 조그만 마을에서 자신이 하는 방식으로 국제영화제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좆까라 비싼 상어영화 우리는 더 좋은 영화를 싸게 많이 볼 수 있다는 거다. 지금 인제에서 신지승의 삶을 보면 이건 자신의 처지가 반영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지승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과, 대부도 주민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좀 겹치는 지점이 있다.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생각 나면 다시 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