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인간 광고판


1인 미디어는 어떤 시대를 열었을까? 웹 2.0을 부르짖던 시절만 하더라도 유토피아적 상상이 하늘로 치솟았다. 지금은 모르긴 몰라도 영상의 대다수는 유료광고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유튜버 자신은 물론 광고임에도 진정성을 가지고 성심성의껏 리뷰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대다수 유튜버의 계정은 1인 광고판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았던 유튜버 대다수가 조금 인기를 얻고 나니 [유료광고포함]을 자랑스럽게 영상 초기에 달았다. 많은 셰프가 최근 유튜브 시장에 뛰어 들었는데 광고가 들어온 걸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강조되는 것은 광고보다 자신의 요리다. 종종 보는 유튜브 중 예도TV가 있다. 요즘 점점 동시대 철학도 다뤄서 도움이 좀 된다. 예도도 자신의 영상에 광고를 넣는다. 영상 조회수는 조금이지만, 시청시간이 길어서 광고가 붙는단다. 예도는 유튜브 수익을 기부하는 데 쓴다. 그럼에도 예도 역시 광고판이란 사실은 정말 부인하기 힘들다.

오징어게임의 깐부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깐부치킨 광고를 거절한 것이 그래서 그렇게 화제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나와 안 맞아서 안 한다고했다. 그렇다면 얘기는 비슷하다. 내가 광고다라는 사실을 다들 감추고 산다. 마치 내가 원래 그런데 광고가 우연찮게 나와 맞아서 붙은 것처럼 보이길 바란다.

김동규가 포착한 저 간판을 휘두르는 광고맨. 저 광고맨의 몸짓은 그 자체가 광고로 기획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저 몸짓은 광고 이상이 된다. 속된말로 아트네. 예술이다. 처음부터 그런 행위가 광고 그 자체였음에도 그 광고를 넘어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몸은 더 이상 광고판에 관심이 있지 않다. 몸은 오직 자동적이다. 저런 무관심성이 가능할까? 민하한테 귀동냥으로 들은 거지만 랑시에르가 철지난 칸트로부터 길어올린 무관심성이 어떤 종류의 dissensus의 핵심적 태도라면, 저 광고맨의 몸짓 역시 그런 종류의 것이다. 몸짓이 몸과 광고의 연결을 끊어낸다. 김동규는 광고와 예술이 맞붙어서 드물게 예술이 승리한 순간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저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군중 속에서 반쯤은 혼이 나가 광고판을 열심히 돌리는 몸짓으로부터..

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미술비평은 왜 실종됐을까?

다 아는 이야기를 해보자. 여기에 전업 미술비평가가 있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해서 먹고살까? 운 좋으면 대학 강의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교수도 아니고 강사법이 개정된 이후 계속 주어지던 강의도 이제 하나만 남았다—달랑달랑한다. 간간이 미술잡지란 곳에서 원고 청탁이 오는데 그런 곳의 원고료라고 해봤자 뻔할 뻔자다. 미술 매체에서 들어오는 청탁은 대다수 값싼 원고료에 짧은 지면이 주어진다. 비평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대의로 원고를 써내지만, 사실은,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잊혀지기 때문이라는 긴요함이 의무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한 여기에 에너지를 많이 투여하기엔 힘든데, (적당히 하게 되기 마련인데) 다른 일도 많이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요원하기 때문이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최근 공공기관에서 비평가의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에서 청탁하는 원고량은 A4 한 페이지가량에 불과해 돈도 되지 않을뿐더러 거기서 사용하는 원고료 지급 기준이란 인간문화재라도 되지 않는 이상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1] 그렇다면 남은 동아줄은 작가다. 문예지원사업으로부터 시작되는 작가로부터의 원고 청탁은 요즘 관례화되는 분위기다. 이것이 사실은 비평가가 비평을 할 수 있는 토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평가는 이들을 붙잡아야 한다.

언젠부터인진 모른다. 비평가와 작가 사이에는 갑을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혹자는 비평가가 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반대다. 키를 쥐고 있는 쪽은 작가다. 왜냐면 이들은 지원금-기반-예산을 가지고 비평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선택은 뒤샹 이후 가장 강력한 미술의 방법이다.[2] 한 예로, 비평가가 많이들 활동하는 레지던시 같은 곳에서 담당자는 ‘어떤 비평가가 좋을까요’라고 작가에게 묻는다. 작가의 한 마디가 비평가에겐 곧 기회가 된다. 초대된 비평가가 스튜디오 비지팅에서 혹여나 엄한 소릴 한다면 작가 사이에서 소문이 삽시간에 퍼질 것이다. ‘그 평론가 성의 없고 별로다.’ 물론 작가도 비평을 할 수 있고 비평에 대한 반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 소문을 통해서 행해지는 것은 대개 인물 품평이다. 비평가는 표면에선 떵떵거리면서 선생님 소리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종류의 소문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걸 내심 두려워한다. 작가는 비평가가 먹고살기 위한 중요한 고객이다. 그래서 그런 프로그램에서, 비평에 있어서, 비평가는 항상 CS 교육이라도 받은 양 작가를 대한다.

혹시나 비평가가 제대로 된 비평을 한다면 곧바로 민원 처리를 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여기서 제대로 된 비평이란 비판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비판적이지 않은 비평은 비평이 아니다.[3] 가장 많은 것은 ‘내 작품을 잘못 읽었다’ 류의 민원이다. 대부분 평범한 비평가는 작가의 의견을 반영해준다. 그건 비평가가 작가의 말에 수긍해서가 아니다. 그냥 그 돈 받고 글을 쓰는데 문제까지 생겨 품평의 대상이 되는 것이 귀찮고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물게 수정요청에 이의를 가진 비평가가 있다면 실로 문제가 된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 작가는 아마 수정 원고를 받기 전까지 돈을 입금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돈을 줬다면 돌려달라고 할 것이다. 돈 없는 예술가가 다른 비평가에게 원고를 청탁하려고 한다고. 그래서 그 돈과 기회를 포기할 수 없다고 약자성을 드러낼 것이다. 한편, 공공기관이 중간에 있다면, 곧장 가장 곤란해지는 건 담당자다. 담당자는 여기서 선택해야 하는데, 대개 누가 문제를 더욱 크게 일으키지 않을지에 따라 ‘원래 그런 거니 좀 참아주세요’를 말해야 하는 대상이 정해진다는 이야기로 흐른다. 대개 작가의 입장은 자신은 말도 안 되는 모욕을 당한 선량한 피해자다. 반면에 비평은 자신의 작업을 의미화하고 계속 남아 참고와 인용될 강력한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이므로 수정밖에 답이 없다. 비평가는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비평의 본임이 작가의 의도를 진실되게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수정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담당자가 죽을 때까지 들들 볶여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 것이다. 싼값에 쓴 글 하나쯤은, 그리고 이 글로 인해 관련된 사람이 모두 불행해진다면, 더불어 내 상황까지 악화된다면, 그런 글 수정 하나쯤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 이 경우 비평가는 글을 고쳐줄 것이다. 일은 이렇게 진행된다.

작가들은 비평의 실종을 말한다.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숨어 있다: 비평이 없기 때문에 작업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비평이란 무슨 뜻일까? 실제로 그런 비평은 곧장 작가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작업을 가장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 작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작업의 진짜 의미를 가장 잘 안다고 추정되는 사람은 작가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가는 비평의 실종을 말한다. 자신의 말을 그대로 갖다 붙인 그런 비평은 비평이 절대로 아니라고. 아무 의미나 통찰이 없다고. 이 경우, 비평은 사라진다. 한편, 비평이 자율적인 주장을 담았을 때 결과는 모 아니면 도다. 가장 성공적인 경우에, 작품에 대한 평가가 작가에게 수긍 가능하면서도 어떤 종류의 통찰까지 줬다면, 그런 비평가는 작가에게 최고의 비평가가 아닐 수 없다. 모두가 해피한 아이디얼이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때 사정은 달라진다. 이때 비평은 작가의 작업을 왜곡하거나, 비평가 자신의 개인 주장을 위해 작업을 멋대로 사용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 경우 작가의 입장에서 굳이 이런 비평은 있을 필요가 없다. 내 작업에 대해 좋게 써 줄 비평가가 얼마든지 있을 텐데, 굳이 내 돈과 기회를 써서 그런 것이 세상에 있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작가는 아마 이 글은 청탁의 요점에서 벗어났으며, 자신에 대한 적절한 비평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 경우도 비평은 사라진다.

그래서 비평가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비평은 분명히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야 하지만, 그리고 그런 비평은 작가의 의도보다 비평가 자신의 고유한 주장을 담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 비평은 비판보다는 작품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종류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작가는 비평가 고유의 예술관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찬사를 매우 괜찮은 모양새로 붙여 줄 비평가라는 아이디얼을 꿈꾼다. 그것이 가능할까? 얼굴도 작업도 모르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에게서 ‘지원을 받았는데요’하면서 연락해오는 관계에서, 기관 담당자가 올해도 무탈하게 진행할 연례 행사에 매칭 비평가로 모시고 싶다고 천진난만하게 연락 오는 제도적 상황에서 가능한 일일까? 지금의 관계에서 비평가는 작가의 동료인가? 적인가? 실로 적도 동료도 아니다. 비평가는 마치 진열대에 디스플레이된 다채로운 상품처럼 쇼핑의 기회비용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그런 관계 속에서 한편에서 아이디얼한 모델을 전제하고, 또 한편에서 비평의 실종을 냉소적으로 되뇌고 있다—여기서 가장 흔한 비평 모델이 주례사가 아닐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이런 교착 상태에서도, 만약 작업과 세상에 대한 비판적 통찰이 비평이고, 여전히 그것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모종의 자율성을 긴급하게 요청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설명한 이런 관계적 배치에서 작가는 어쩌면 썩은 동아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내가 이런 관계를 이야기하는 건 저런 관계도 있다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미술의 역사에서 작가와 함께한 비평가가 수도 없이 많다: 각자가 떠오르는 인물을 열거해 보자. 이들은 어떤 작가와 이웃해 있거나 어떤 작가와 적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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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생한 경험담에 관해서는 미술비평가 안소연의 글을 참고할 것. 안소연, "나의 글쓰기와 원고료", 예술경영 웹진, 2021.10.28. (접근: 2021년 11월 1일, https://www.gokams.or.kr/webzine/wNew/column/column_view.asp?idx=2505&page=1&c_idx=90&searchString&c_idx_2&fbclid=IwAR2EzDOi_mR4dvBK4H90LXXssyMZZaDxr5YnTMS73VnAhKsGV_awHkeQsiM) 하지만 안소연 자신도 시사했듯이, 공공기관을 향한 인건비 상향의 우선적 요구는, 비평 그 자체의 문제에 관해선 부분적이거나 간접적인 해결책이다.

[2] 최근 몇 년간 전시나 창작 지원에서는 사례비를 쓸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과거에는 인건비 지출이 더욱 제한적이었다. 이제 문화재단 지원에서 기획자나 비평가를 작가 자신의 전시에 채용할 수 있고, 사례비도 지급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비평은 전문가 리뷰라는 명목으로 작가 지원 '혜택'에 동원되는 것이 현실이다. 작가를 위한 비평 지원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에서 특히 유망예술가 지원 참고. "2019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사업 정기공모 안내", 서울문화재단 웹사이트, 2018년 12월 19일 (접근: 2021년 11월 1일, https://www.sfac.or.kr/opensquare/notice/support_list.do?cbIdx=992&bcIdx=57533&type=). 한편, 아르코는 비평가나 기타 전문가를 섭외할 경우 계약서를 쓰도록 명시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아르코,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을 통해 표준계약서 만들기를 추진했으나, 여기서 비평가와 의뢰자 사이의 계약서는 어느 곳에서도 고려되고 있지 않다. 자주 비평가와 의뢰자는 기관제출용 형식적인 용역 계약서를 작성하곤 하는데, 글의 사용 범위와 기한의 고려 없이 을(비평가)이 갑(의뢰자)에게 어떤 경우에든 피해주는 것에 대한 엄격한 손해배상을 명문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비평가와 작가 사이에 글을 '준다/(못)받는다'라는 일반적인 통념과 공명한다. 아르코 표준계약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문체부)시각예술분야 표준계약서 11종 고시(2019.3.1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웹사이트, 2019년 3월 12일, (접근: 2021년 11월 1일, https://www.arko.or.kr/board/view/4008?bid=639&cid=1601718).

[3] 내가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할 포스터(Hal Foster)의 어느 인터뷰다. "비판적(critical)이지 않다면 그것은 비평(criticism)이 아니라, 단지 부연설명이나 의견에 불과하다. ... 또한 부정성의 해명이란 긍정적일 수도 있다." Christopher Bollen, "Hal Foster", Interview Magazine, December 5, 2014, (acceced: Nov 1, 2021, https://www.interviewmagazine.com/art/hal-foster-the-insiders)


2021. 10. 22.

퐁에 게재됨

오늘의 인용

“결과 안에는 원인 안의 것보다 많은 것이 들어 있다.” 퀑탱 메이야수

2021년 10월 19일 화요일

미술과 사회

1980년대 민주화 진영이 대통령 직선제를 성사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동력을 상실하고 난 후, 몇몇의 유학생을 통해 공공미술은 민중미술의 다음 단계로서 상정되었다. 공공미술은 2000년대 참여정부를 맞아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급성장했는데, 이제 시민의 미술로서, 엘리트주의적 순수미술과도, 또 과격한 반정부 지향성을 가진 민중미술과도 거리를 두는 것으로 특징화 된다. 이는 참여정부의 포퓰리즘적 지향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공공미술은 말하자면 관주도-대시민-복지서비스와 대동소이하게 이해되거나, 최소한 그런 효과를 냈다. 그리고선 수많은 문제가 나타났고, 또 수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많은 연구자와 비평가는 공공미술의 발전 3단계—공공장소 안의 미술(art in public space), 공공장소로서의 미술(art as public space), 공공의 이익을 위한 미술(art for public interest)—를 논했는데, 이는 사실 미국 NEA 예술 기금 지원 제도의 변천사를 미술의 발전과 겹쳐놓고 오인했을 뿐이다—제도와 작품을 혼동하는 것이 이 분야의 특징이다.

아무튼 공공의 이익을 위한 미술은 90년대 행동주의 미술을 주름잡았던 뉴장르공공미술의 수용과 더불어 종종 커뮤니티 아트와 동일시되어 가장 진일보한 공공미술로 여겨졌다. 어느 순간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최, 주관하는 공공미술—여기에 더해 예술가를 동참시키는 공공사업—공모에는 전문 커뮤니티 아티스트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여기서 커뮤니티 아티스트는 기관과 시민 사이에서 상상력을 기입하는 역할을 자임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공공의 이익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대부분 공공장소 안에서 ‘조형물’이 남긴 물리적 폐허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심리적 폐허를 남겼고, 종종 누군가는 실패를 말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그런 실패는, 1980년대 민중미술, 그 중에서도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의 시민미술학교에서 이미 겪은 바 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아무리 평등한 관계 안에서 함께 예술로 놀아보자고 주문해 봤자, 그리고 위계질서를 만드는 일을 동인 내에서 금지하는 행동강령을 만들어 봤자, ‘일반인’의 입장에선 심드렁하거나 배우기도 빠듯하다. 그렇다면 예술의 ‘이유’는 시작부터 미끄러진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일반인이어야 하지만, 충분히 예술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일반인이어야 한다는 모순 때문에.

이따금씩 자주, 이런 관계 속에서 ‘결과 보고’로 갈무리되는 전시는 모두 예술가 자신의 자의적 아이디얼로 수렴되곤 했다. 커뮤니티 아트, 사회와 관계 맺는 예술, 공동 프로젝트의 결과는 대개 재미없는 사진 다큐멘테이션이나 수집품이 나열되거나, 프로젝트의 부산물이 그대로, 혹은 약간의 조작을 거쳐 전시되거나, 혹은 작가의 개인전이 되거나이며, 여기서 ‘전시’라는 포메팅(formating) 그 자체가 가지는 문제가 고스란히 노출된다: 전시는 내부로부터 무엇이 표면으로 나왔든, 표면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는 관람 형식이다. 그리고 그 표면은 곧 약자성의 포르노적 재현이라는 문제와 부딪친다. 하지만 대개 타자의 재현은 별다른 숙고 없이 온정적인 태도로, 다수 무신경하게 제시되곤 했는데, 이유는 아마 작가의 위치가 이미 타자의 편에 속해 있거나 최소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류학의 기초 조사 방법인 라포 따위가 거론된다.) 하지만 착각으로, 작품이 예술계에 프레젠테이션 되고, 전시라는 제도적 표면으로부터 들어가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특권적 장소에서 작가는 약자가 아니라 저자이며, 무언가를 결정하고 보여줄 권한을 가진다. 그러므로 작가가 스스로의 위치를 타자의 편으로 착각함으로써 등장하는 문제는 약자성의 전용이다. 약자성은 작가의 표현을 위한 재료로 격하된다. 그 효과는 미술계 내 적극적 우대 조치라는 우산이지만, 꼭 그만큼 약자성을 확증하고 강화시킨다.

이 고리타분한 문제는 민중미술부터 공공미술을 지나 사회적 실천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관계 맺으려는 작가의 프로젝트 언저리에 언제나 그림자를 드리우며, <1968-1995>나 <30년x365일x1만8백회> 같은 김리아의 몇몇 작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김리아는 과거 한 사람의 삶 그 자체였던 사물을 미학적 오브제나 설치로 재가공했다. 이것은 아마도 어떤 경의를 담은 ‘헌사’겠지만, 그것은 쇠락해버린 어떤 기억-오브제에 대한 멜랑콜리한 헌사인 동시에, 그 멜랑콜리아에 사로잡힌 작가 자신에 대한 헌사일 때 그렇다. 가장 성공적인 경우, 이 멜랑콜리한 시선은 유행에 따라 빠르게 성쇠하는 근대성이라는 한갓 덧없음을 포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근대적 진보의 폭력에 짓눌린 약자성 역시 확증된다: 작가의 성찰성이 강화될수록 대상의 해방은 요원하다.

또 하나 중요하게도, 이미 지적했다시피, 이 성찰성의 문제는 작품과 전시라는 관례적 프로토콜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때 작품과 전시는 근대성의 균열을 포착했음에도, 그것을 데카당하게 찬미하는 가운데 심미주의 그 자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가장 진보적인 의제와 태도를 가진 작가의 예술이 가장 관례적이고 보수적으로 나올 수 있을까? 이는 많은 사회와 관계된 미술이 화이트큐브와 맞닥뜨렸을 때 똑같이 겪는 문제다. 현실과 발언이 회화라는 재현 매체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들이 그렇게 형상화하고자 한 민중 이미지가 사실은 그들 자신이 만든 이데올로기적 재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것보다 예술은 더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이나 예술가 그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안드레아 프레이저의 말을 기억해봐도 좋을 듯 싶다. “예술가는 제도다.” (2021. 10. 19.)

홍티아트센터 작가비평으로 씀

실재의 귀환?

늦게 잡아도 2000년대 중반 언제쯤부터 인문학의 지형도에 실재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은 유럽과 영미권에 산개한 젊은 철학자의 지적 네트워크가 주도했고 전통적인 아카데미라기보다 블로그를 통한 상호 간의 교감으로부터 시작된, 상대적으로 ‘젊고’ ‘혁신적인’ 시각으로 평가된다. 이들이 급진적으로 단절하고자 한 것은 근대 이후, 정확하겐 칸트가 구축한 어떤 종류의 거대한 철학적 체계 그 자체다. 칸트의 유명한 이성에 대한 ‘비판’이 신, 절대자, 물자체(thing itself)에 대한 실재론적 관심을 제한해 인식론으로 전환시켰다면, 일군의 젊은 철학자는 상관주의라는 용어로 그것의 한계를 포착해내기 시작했다. 인간이 있든 없든 간에, 인간이 인식하든 아니든간에, 저 산과 공룡의 화석은 실제로 ‘있으’며, 방사능 핵의 분해의 속도 상수와 열광 법칙의 결과로부터 지구의 나이를 도출해낼 수 있다. 젊은 철학자는 말한다. 일단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인간과 상관없이, 인식의 범위를 훌쩍 넘어버린 태초의 순간에 무언가 ‘있었다’라고 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상관관계에 기초한 필연성이라는 기반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리고선 우연성, 가능성 그 자체가 실재라는 결론, 그러니까 실재하지 않는 것이 곧 실재한다라고 하는 역설적인 결론에 공통으로 도달한다. 젊은 철학자는 주장한다. 그 가능성을 사변하는 것이 곧 철학의 본임이라고.

그리고 이 사변의 한 가지 방식이 예술이며, 어떤 종류의 패러다임적 전환도 감지된지 오래다. 실재론적 전환에서도 전위병 역할을 하고 있는 객체지향존재론(OOO)의 그래엄 하만(Graham Harman)은 《아트리뷰》가 선정한 미술계 파워 피플에서 언젠가, 몇 년동안 10위 안에 랭크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시장에는 한편에서 한갓 돌멩이 같은 사물이 예술가와 무언가 교감이 끝난 듯, 의미심장하게 배치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샤먼이라는 오래된 예술가 모델이 돌아온다. 또 다른 한편에서 과학과 기술과 상상력을 동원해 물질에 접근하는 다양한 실천이 예술에서 가능한 영역으로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 모델은 연금술사와 비슷하다. 옥창엽의 뮤온 입자를 가시화하는 작업 <흩어지는 것에 대하여>는 다분히 후자 쪽에 속한다. 뮤온 입자는 우주방사선이 지구 대기권과 충돌하면서 발생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일상적 감각에서 그것을 절대 볼 수 없지만, 이 전시장에서는 감지기를 통해 반응하는 전자 장치—깜빡이는 빛과 소리—를 통해 그것의 ‘존재’를 예외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관객이 움직일 때마다, 보이지 않는 뮤온입자가 움직이며 감지되는 순간,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 경험이 미술사에서 미니멀리즘부터 익히 연구된 현상학적 경험과 유사한 것으로,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이의는 하만에 의해 반박된다. 하만은 그의 예술론을 짧게 축약한 에세이 「관계 없는 예술(Art without Relations)」에서 마이클 프리드의 유명한 연극성 개념이 관계주의적으로 잘못 이해됐다고 주장하는데, 연극성은 관찰자가 인식론적 관점에서 무언가를 보고 패러프레이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들뢰즈 식의 존재론, 무언가로 되기(becoming)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다양한 요소는, 하만식으로 인간을 포함하는 다양한 부품은, 무대 위에서 상호 결합해 새로운 존재로 변모한다—마치 가면을 쓴 연기자가 무대에서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변신하듯이. 이렇게 보면 물질과 인간 사이에 펼쳐진 연극적 경험은 그 자체가 (인식론적 패러프레이징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건이 된다. 하만은 이런 사건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품의 하이브리드가 진정한 예술작품의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 의미에서 옥창엽의 전시장은 관람성의 장소라기보다, 그 자체가 존재 탄생의 무대다. 여기까지가 이론의 이야기다.

고대 애니미즘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는 항상 현실에 없는 것에 매혹되고 그것을 사변해왔다. 페인트든 입자가속기든 뮤온 감지기든지 간에, 예술가에게 매체는 그런 것과 접속하는 가능성의 매개체였다. 그것은 결코 신실재론적 전환이 불러일으킨 특별한 일이 아니며, 다만 이론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다르게 예술을 이해했다는 사실만이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흩어지는 것에 대하여>는 실재론적 전회 속에서 ‘이론적’으로 새롭게 읽혀질 여지가 충분히 있음에도, 만약 ‘실재한다’ 그 자체에 그쳐버린다면, 그것은 특별하다기보다 그냥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해보자. 무엇이 특별한가? (2021. 10. 19.)

그럴 수도 있는 일에 대하여

전시장에 들어서면 커다란 폐선이 불안정하게 놓여 시선을 붙잡는다. 조금 눈을 돌려보면 해양 쓰레기처럼 보이는 사물이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그 위에는 각각 적당한 크기의 고깔이 천장으로부터 매달려 있어, 거기서 모래가 떨어지며 사물의 형태를 서서히 덮고 있다—이것은 폐선도 마찬가지다. 곧 모래는 모두 떨어지고 사물은 이 속에 잠기리라. 어느 방치된 바닷가는 전시된 이 광경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때 새롭고 멋져 보였을, 바다를 몇 번이고 가로질렀을 배는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관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지배하는 것은 덧없음이라는 감각이다.

어떤 종류의 압박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휴먼스케일을 훨씬 상회하는 배가 억지로 인부 여럿과 기계의 힘을 빌려 전시장에 들어가는 상상은 전시를 보는 것과 동시에 거의 자동으로 이뤄진다. 안 보이게 치워놨다곤 하지만 조금만 돌아다니면 발견할 수 있는 전시장 구석에 수납된 모래 포대 역시 어떤 종류의 처리 곤란함을 잘 보여준다. 애초에 화이트큐브로서 매우 간결하고 비특정적으로 만들어진 장소에 힘겹게 구축된 인공자연은—비록 그것이 자연과 닮는 것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성공했다면 더더욱—그 자체로 강밀한 에너지가 투여된 결과다. 서서히 떨어지는 모래가 온몸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사라짐에 관한 시학’은 그런 면에서 보면 그 자체가 압박이다. 화이트큐브라는 무균질 공간에 자연적 특성을 구축하고 다시 그것을 서서히 무로 되돌린다는 식의, 그리고 종국에 전시가 끝나면 반드시 같은 과정을 역순으로 해야만 하는 운명의, 만약 허락한다면, 그 압박의 실체를  낭비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시적인 작업이 낭비를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할 뿐만 아니라,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 자체로 뭔가를 알려준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마르크스가 일찍이 지적했던 상품이 가진 독특한 특징으로, 이것은 자신의 기원을 감춘 채로 처음부터 그것이었던 것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김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른 채 마트에서 잘 포장된 브랜드를 안심하고 구매한다. 나아가, 역시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일이 이렇게 진행되고 나면 인과 관계의 전도가 일어나는데, 노동이 있기 때문에 상품이 있다는 자명한 사실은 여기서 외려 상품이 노동을 결정한다는 명제로 교체된다. 뜬금없이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전시장과 작품이 전제하는 자연성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 미술 전시에서, 그것이 오브제든 설치든 환경이든 뭐든 간에, 작품은 화이트큐브와 함께 브라케팅(bracketing)될 운명에 처해있고, 이 사실은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전제되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이트큐브 안과 밖은 여기서 통약불가능한 선으로 나뉜다. 거대한 폐선과 쓰레기와 모래가 여기 놓여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관해서 궁금해하는 것은 뭔가 작업의 본질과 무관하게 느껴지며, 대신 강요받는 것은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와 사물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시간적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니멀리즘을 지나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이란 이름으로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리얼리티에 대한 탐사가 여기서 왜 희박해지는지가 궁금했다.

생각해볼 수 있는 한 가지는 리얼리티가 미적 가상이 되어버렸다는 불길한 가설이다: 즉 홍티아트센터 옆 포구에 버려져 있던 폐선은 그 자체로 아무 의미가 없으며, 반드시 미적 브라케팅이 이뤄지고나서야 어떤 종류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 이는 단 한 장의 멋진 사진을 건지기 위해 낭떨어지에 매달린다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되어버린 지금의 패러다임에서, 인스타그램을 가득 메우는 팬시한 사진이 그 한 장이 나오기까지 수 많은 B컷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을 우리가 모두 알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럴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장소에서 비장소로의 이동, 폐선이 홍티 포구에서 갤러리로 이동한 사건은 퇴행적이라기보다 동시대적이라고 봐야한다. (2021. 10. 19.)

홍티아트센터 작가 비평으로 쓰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