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9일 수요일

이상한 결론

 https://www.pigheadlab.com/timenow?fbclid=IwAR0EcZoKRSBIv67xYvb1LfpWVocgp7TDpk2jwwYEqMF-xYp8hmWgw36ptFI


환대가 다시는 이런짓 하지 말자는 것으로 결론이 나는 희한한 진행...

다음날 우리는 저녁까지 숙취로 고생했다. 그리고 친구와 나는 우리가 너무 경각심을 잃은 것이라며 반성하고 다시는 현지인과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본 낯선 이들을 어떻게 믿고 이런 짓을 했을까라며 자책도 많이 했다.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서 다행이지 여자 둘이서 무슨 일이라도 당했으면 어쩔 뻔했냐고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혼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잘못이 없다. 우리가 부주의했던 거지. 부주의했고 경험도 없었으며 분별력도 없었다. 다음날 우리를 걱정해서 찾아온 그들을 외면하고 숙소를 몰래 빠져나왔던 우리가 정말 어리석었다. 받은 환대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하고 거절은 진심을 담아 조심스럽게 상대방에게 전했어야 했는데... 그 후 한동안은 낯선 이들과의 대화를 피했다. 하지만 그렇게 폐쇄적으로 여행하는 것은 여행의 만족도를 떨어뜨릴 뿐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특별한 경험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기 위해 나는 다음의 규칙을 만들었다.

1. 낯선 이와 둘만 있는 장소는 피할 것.
2. 함께 걷거나 이동하기 보다는 한 자리에서 대화할 것.
3. 2명 이상일 경우 서로 낯선 이가 아닌 사전에 알고 있는 일행들이라면 피할 것
4. 술은 반드시 직접 사서 마실 것
5. 스킨십이나 대화에 불쾌한 것이 있다면 바로 표현할 것

좋아요와 한줌의 도덕

아무 생각 없이 누르는 좋아요 1개가 모여서 한 사람을 궁지에 몰아 넣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본다. 만약 당사자가 자살했다면 좋아요 1개를 누른 사람은 당황하겠지. 그럴 줄 몰랐다고. 그냥 기분에 누른 거라고 그러겠지. 한 사람은 그러면 기분이 좋그든요, 다른 한 사람은 죽을만의 고통 적립 중. 

SNS에는 좋아요 총량제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함부로 좋아요를 남발하지 않겠지. 페북은 좋아요 등급제를 실시하라. 가끔 가다가 진짜 좋아서 누르는 좋아요와 맨날 누르는 좋아요가 어떻게 같냐. 아니면 좋아요 총량제라도 실시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좋아요를 도토리처럼 구매해서 정말 좋은 게시물에만 누르게 했으면 좋겠다. 

2023년 4월 16일 일요일

전수현의 <투걸즈>와 <롤링>에 대한 노트

전수현, <롤링>, 2023, 스컬피, 테라코트, 아크릴, 모터, 우레탄폼, 스프레이, 38x 37.5x 42cm.

가. 관찰

1) 하단부는 우레탄폼으로 만들어진 덩어리인데, 언뜻 보기엔 마치 케이크 반죽 같다. 

2) 우레탄폼 위에는 빙글빙글 돌아가게 만든 원반이 놓였다. 이 원반은 디스코팡팡 같아 보이기도 하고 요즘 귀하다는 턴테이블 같아 보이기도 한다. 둘 다 아무튼 레트로한 정서를 불러 일으키며, 멍때리기도 가능하다. 

3) 원반 위에는 스컬피 덩어리가 있다. 이 덩어리를 자세히 보면 신체의 부분, 구체적으로는 덩어리감이 있는 엉덩이와 다리가 다발로 마치 꽃꽂이처럼 처리되었다. 여기서 몸은 온전함을 가지기보다 부분대상으로서 제멋대로 증식하고 서로 달라 붙어 있다. 

나. 분석

1) 우레탄폼은 건축용 자재로 샌드위치 패널 등의 틈새를 메우는 용도로 자주 사용하는 건자재다. 이 재료의 사악한 점은 저렴한 대신, 미대생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협하는 데 있다. 몸에 유독하고 불에 매우 약해서 때때로 화재를 양산하며, 그저 뿌리기만 했을 뿐인데 무언가 질감과 덩어리감이 효과적으로 생기기 때문에 마약처럼 중독되기도 쉽다. 아무튼 이런 비미술적 재료가 인기를 얻었던 시절이 몇십년전. 오히려 (그것이 물론 불가능할지라도) 회화, 조각 등 전통으로의 복귀 충동이 대세로 자리잡은지 몇 년 지났다고 느껴지는데, 정작 여기서는 옛날 재료가 천연덕스럽게 사용되었다. 

2) 최우람을 보듯, 요즘은 키네틱 아트도 AI까지 동원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에서 주목해 볼만한 것은 움직임 자체의 창안이라기보다 움직임의 감성이다. 반복해서 무언가가 돌아오는, 마치 유튜브에서 로우파이 음악을 틀기만 하면 볼 수 있는 반복적인 애니메이션 짤, 테라피와 엽기를 왕복하는 만족영상(satisfying video), 후렴구로만 이루어진 후크송, 그런 미니멀리즘적 향유 양식은 최근 지배적인 미감이 되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단순하고 반복되는, 생산적이고 효과적인, 컨베이어벨트의 기계적인 움직임은 여기서 미학, 즉 어떠한 종류의 쾌감으로 복귀한다. 

3) 원반 위에 올려져 있는 절단된 신체 다발은 그야 말로 ‘덩어리’라는 말이 어울린다. 페티시, 절단되고 취사선택 된 몸의 일부, 서로의 선을 넘거나 무분별하게 서로 섞인다. 관계라기보다 교미라고 불러야 온당할 이런 감각은 게일 루빈부터 폴 프레시아도에 이르는 ‘일탈적 섹슈얼리티’와 공명하는 부분, 동시에 이것은 굿즈화된 악취미적 피규어의 형상이므로, ‘불온할뻔 했네’정도로 안정화되는 부분. 피규어의 악마화와 악마성의 피규어화 사이, 그로테스크와 귀여움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진동하는 선.

다. 종합

1) 무언가 과격해 보이는, 어그로를 끄는, 지옥에서 가지고 온 케이크 같은 걸 표현한 것 같다. 이 케이크의 고약한 점은 먹다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다시 총집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런 소품이 가장 어울리는 장소가 핼러윈이란 사실을 상기하면 무언가 으스스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2) 레오 스타인버그는 비평가는 클리셰 생산자라고 했다. 이 말은 비평가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피카소는 큐비즘이란 클리셰를 만들었다. 

3) 동시대성을 획득하려는 작가는 여러 가지를 끌어 모으고 조합할 때 최근에 어디서 본 가장 힙한 것을 흉내내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이것은 힙한 것일까 키치한 것일까? 힙하고 키치하다? 어쨌거나 작가가 이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놔두는 감각 안에는 분명 다음 시즌의 클리셰가 될 가능성도 있다.

달성문화재단 비평매칭 1차 원고

2023년 4월 11일 화요일

비평과 명예훼손

https://docs.google.com/document/d/1NgDa_CqVnQT8tPl5bYVeaJHcwI-OAl9E1673bjUNP-M/edit?usp=sharing&fbclid=IwAR1q2or8lKKE8-62oZhejtbnhZzX7ooOfk7cS8USEI0g-hGdDXDya-L4gl4

진세영의 비평에 관해 이나라가 대응한 글이 화제가 되었다. 진세영의 비평은 '겁없이' 네임드 필자를 거론하면서 이리저리 품평을 한다. 거기서 이나라가 재수없게 걸린 거지. 미술에 대해 닥치고 영화에 대해서만 쓰라고 진세영이 호쾌하게 날렸어. 개인적으론 좀 사이다이기도 했는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나? 이해 못할 것도 없어요. 이나라가 먼저 선방을 날렸거든. 미술계에선 작업을 잘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는 많은데 작업을 잘 읽고자 하는 관객이 없다고? 영화랑 반대라고? 영화와 미술계를 모두 까는 신박한 말 같긴 한데, 세세하게 그런 걸 다 이해해주긴 싫고, 어쨌거나 교만하기 그지 없는 글인데? 아무튼 진세영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이때 진세영은 그야말로 작업을 잘 읽고자 하는 관객1이었다고. 이나라는 원하든 원치않든 비평가의 자리에서 무지랭이들(공부 안 하는 영화 감독, 공부 안 하는 미술 관객)한테 발언하지만 이무렵 진세영은 무명의 지방러, 댓글러 그런 거라고. 미술에 졸라 관심있고 더 알고 싶어하는. 그니까 이나라의 페북 발언은 드러나지 않은 미술애호가의 바닥 심리를 도매금으로 후려 치는 거라고. 너는 없는 존재와도 같다고. 열이 안 받겠나. 이나라는 특정인을 거론 하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열받는. 없는 사람 취급 받은 수 많은 사람중 1인으로서 ㅅㅂ 언젠가 한 번 나도 복수한다 그런 마음을 안 가지겠냐고. 그게 그 지면이 된 거지...

이 포스팅은 비평과 명예훼손 사이의 상관관계, 페북의 공적인 성격과 사적인 성격, 비평가의 '계'에 대한 발언은 사적인 발언이냐 공적인 발언이냐 만약 비평가가 페북에 미술계에 대한 논평을 했다면 그건 사적인 발언이냐 그걸 깐다고 돌맹이를 던지는 거고 명예훼손을 하는 일이 될 수 있냐 그런 걸 따져보고자 했으나 다음 기회에 해야겠다.

2023년 4월 3일 월요일

미술왕 글 생각 한스푼

https://echo.pong.pub/9?fbclid=IwAR17fE4pBNn7XEEU13Qrn61mcqcr7Q1HCbg_dF6tWOcDE-apcS89_YbVNxI

최종렬의 복학왕 담론을 깔고 쓴 자기고백이다. 최종렬에 대해선 어느정도 나올 수 있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지방러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최종렬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몇 가지 단상 메모.

1. 소재주의

지방미술이 소재주의에 천착한다고 하는데, 무슨말인지 직관적으로 알 것이다. 달항아리를 30년째 그리고 뭐 그러는 작가가 떠오른다. 여기서 소재주의는 포괄적인 의미로 필자가 썼듯, 어떤 경향성을 띈다는 거다. 근데 실은 모든 작업과 인간은 경향성을 띈다. 안띄는 게 거짓말.. 그게 없다면 미술 작가도 미술사도 없다. 우리가 소재주의라고 경멸하는 작업은 경향성을 가지되 그것이 동의할 수 없는 방향일 때다. 여기에는 사실 느낌만 있을 뿐인데, 비교 대상은 아무래도, 컨템퍼러리아트다. 컨템퍼러리아트와 비슷하지 않은 형태의 경향성은 소재주의다.

소재주의에 대한 영어식, 미술식 표현에서 내가 아는 건 medium specific이다. 따지고 보면 소재주의는 모던아트의 산물이자 정수였다. 하나만 딥따 수련해서 최고봉을 찍는 거다. 매체특정성의 레거시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 지방이라고 달리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퀄리티가 뭐냐? 왜 지방은 손맛을 아직까지 중요시하고, 형상 친화적이며, 미협 같은 커뮤니티 중심적일까? 그것은 망했다라고 성급하기 결단내리기보다 검토해봐야 할 문제. 그것이야말로 필자가 말한 다원주의 멀티버스 미술이 가능해질 수도 있는 지점

2. 반자기계발의지

최종렬이 말하는 "알려고 하지 않는 의지." 정보가 느리고 무언가 변화가 더디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그런 지방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한 가지 단서다. 나는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 편인데, 그렇다면 알려고 하지 않는 의지에도 이유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아는 것이 별로 이 커뮤니티에서 필요가 없기 때문인데...

2023년 3월 20일 월요일

놀고 먹는 예술가 스테레오타입

 

예술가가 게을러 보인다는 건 바쁘게 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서, 배우자나 아내, 자식, 부모를 위해 자신의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사를 위해, 회사를 위해 또 그렇게 한다. 그러다가 병에 걸려 죽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에 속한 이후 도무지 자신을 위해서 생명을 쓰지 않는다.

위에서 예술가가 "살벌하게 바쁜" 이유는 자신 말고 다른 것이 부차적인 이유에서다. 예술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경제적인 면에서는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는 자신을 위해 가난하게 살 것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사람과 예술가의 차이가 그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예술가는 자기가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본업이 아닌 잡일이라고 치부하는 다양한 일은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과 타인을 위해 목숨 걸고 하고 있는 일이다. 이들이 어떤 경제적 궁핍을 겪더라도 이기적인 선택의 결과로 비칠 뿐이다.

2023년 2월 1일 수요일

글값

김도훈이 쏘아 올린 원고료논쟁.

원고료가 올라야 한다: 동의

낮은 원고료의 이유: 사람들이 (돈을 주고) 글을 읽지 않는다 -> 매체가 가난해진다 -> 매체가 망한다 -> 필자는 매체가 필요하다 -> 공급 과잉 -> 낮은 단가 형성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는 이유: 사는 데 필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매체를 사지 않는 이유: 그정도 글은 돈 안주고도 읽을 수 있다? = 매체에 실린 글이라고 아주 특별하지 않다 = 돈 안 드는 다른 경로로 그 필자의 생각을 알 수도 있다 = 언어는 기본적으로 아이디어다 등등

사람들이 글에 돈을 쓸 때: 정말 좋은 글이고 모르면 안 되는 글인데 배타적으로 한 매체에만 실렸을 때 -> 이런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음

높은 원고료를 줄 수 있는 경우 : 상품성이 있는 경우(돈이 되는 원고인 경우)


내 생각.

1. 정말로 돈을 벌고 싶다면:

- 원고의 유통을 통제하면 됨. 글쟁이 협회에 가입한 사람만 글을 쓰고 유통할 수 있게 하면 됨. 그리고 협회에서 기준 단가를 정해서 기준미달은 보이콧하자고 담합하면 됨. 마치 예전 등단을 통해 어장관리하듯이. 가능할까?

- 반대로 유통을 늘리고 단가를 더 낮춰서 해결하는 방법. 얼룩소 등 구독플랫폼이 그런데, 이 경우 몰아주기로 될 가능성이 높음. 

- 간단한 계산: 100명의 구독자가 만원씩 낸다면 100만원. 구독자가 곧 필자가 될 수 있으니 필자가 100명이라고 치고 좋아요 당 천원 계산. 인기 필자가 3명이고 좋아요를 각자가 100개씩 받았다치면 10만원을 받네. 90명정도는 좋아요 10개라고 치면 만원. 전체 30만원 + 90만원-> 120만원. 이렇게만 되어도 적자다. 그러니까 얼룩소는 글을 읽자고 하지만 사실은 등록만 해놓고 아무 것도 안 하는 유령회원이 많아야 하고, 인기 없는 필자가 많아서 돈을 못 가져가야 소수의 필자가 그나마 돈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 <- 안 그러면 회사가 망함. 얼룩소가 잘 되려면 기타 출판시장이 다 망하고 얼룩소란 플랫폼으로 모든 필자가 집결해야 함(유통의 통제). 그냥 뇌피셜.

2. 좌파 인문학의 경우:

- 기본적으로 인기 없는 글(반대중적 견해 등) -> 상품성이 없다 -> 좋아요를 받지도 못한다(얼룩소 탈락)-> 그나마 실어주는 매체는 돈 없는 매체->돈을 못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