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5일 수요일
미키 17
2025년 2월 26일 수요일
선동적인 이미지
국민의 힘 SNS에 이재명 눈찢 사진이 올라왔나보다. 이런 선동적인 이미지의 생산과 순환을 오늘날 막을 수 없다--더군다나 이미지는 언제나 정동, 선동적이다. 오늘날 이미지의 생산을 좋든 싫든 금지할 길이 없으며, 금지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 미디어생태계의 다극성 전체를 사전에 포착하고 검열할 수 있는 감시 기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특정한 목적으로 특정한 이미지의 제한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자유에 대한 보수적인 견해에 기반한다. 생각해보면 이미지 자체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그냥 감각적인 무엇, 객체일 뿐이다. 여기서 당연하게도 중요한건 객체와 관계 맺는 주체다. 무언가 이미지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주체의 몫이다. 이미지 리터러시라고 하든 비평이라고 하든 그러한 능력이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긴급히 요구되는 바이다.
아이돌 산업
'SM 떠난' 이수만, 칼 제대로 갈았다..'전쟁 임박'
전쟁.. 연예계 사업이란 게 다 인신매매단 같은데 이게 마치 엄연한 '공식문화'인 것처럼 이해된지 오래다. 매우 비판적이다.
2025년 2월 20일 목요일
비화면
2025년 2월 18일 화요일
1970-80년대 대구의 비디오 담론
2025년 2월 6일 목요일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2025년 2월 3일 월요일
권정민 교수가 비판이론 공부하는 이유
링크: 내 아들을 극우 유튜버에서 구출해 왔다 < 창가에서 < 기사본문 - 교육언론[창]
한참 SNS에서 권정민이란 사람을 욕하는 피드가 떠돌았다. 이제사 찾아봤다.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비판이론을 공부했다고 한다. "비판이론"은 공산주의 2.0을 위한 기획이라는 게 좌파의 상식이다. 좌파들의 반응이야 알만하다.
내가 재밌게 보는 건 이 사람이 정말 그걸 몰랐을까라는 부분이고, 그리고 좌파들이 이 사람을 순수한 바보취급하는 심리도 그렇다. 내가 읽기에 이 글은 소박하게, 상당 부분 속물적인 컨셉으로, 조금 완곡하게 말하자면 실용적으로 쓰였다. 비판이론이 원래는.. 이렇게 설명충 같이 논하 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보고 이런 글을 쓰라고 하면 어땠을까? 무서워서 못썼을 것 같다. 한국에 비판이론 매니아들이 한둘인가. 그럼 이런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비판이론을 자본주의의 구멍을 메우는 에이전트라고 표현하고, 내가 좋아하는 돌덕질을 오래 하기 위함이라는둥 그런 이야길 왜 쓸까?
이 글의 독자가 비판이론의 매니아들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 글은 무언가라도 호소하려 한다. 그것이 근본적인 자본주의의 해체가 아니더라도, 거대구조 개편의 지향에서는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아이 엄마의 입장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최소한의 교정이 필요하지 않냐는 것이다.
조던 피터슨의 유명한 말, 세상을 바꾸기 전에 방구석 청소부터 시작하라는 말이 웃기게도 여기서 적용된다. 세상을 바꾸고 싶거든 조그만 거 하나라도 바꿔보라. 세상을 바꾸자면서 돌맹이 색깔 어제 오늘 바뀐걸 모른다면 이게 뭘까? 이거 하나 못 바꾸는 이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자본주의를 해체하기 위한 이론이 자본주의의 구멍을 메꾸면 안 되는 걸까? 자본주의가 유지되어 다수가 착취를 당하더라도 누군가는 밥은 먹고 살아야하고 자본주의로 인해 다수가 구조적 폭력을 당하고 있더라도 누군가가 함부로 남을 때릴 때 그걸 말리는 일도 중요하다. 이것도 저것도 다 하면 안 되나? 안 된다고? 정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