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5일 수요일

미키 17

미키 17에서 가장 설명이 안 되는 지점은 사채빚을 피해 익스펜더블을 신청할 정도로 생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미키, 그러니까 미키1이 최초에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였느냐. 우주선이 타기 전에 무언가 훈련을 받는 장면이 짧게 휘리릭 나오고 마지막에 권총자살의 강요를 받는다. 단 한번. 하지만 자살하지 못한다. 중간에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나온다. 설명해주는 여자가 미키1과 이후 미키 시리즈는 모두 같은 거라고. 하지만 미키는 같지 않다고 대답했다. 미키는 정체성을 개체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나타나는 장면. 그러니까 미키는 애초에 미키 시리즈를 통해 생이 이어진다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혹은 못한) 사람 같은데 반대로 극중에서는 죽고 부활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좀 이해가 안 간다는.

2025년 2월 26일 수요일

선동적인 이미지

국민의 힘 SNS에 이재명 눈찢 사진이 올라왔나보다. 이런 선동적인 이미지의 생산과 순환을 오늘날 막을 수 없다--더군다나 이미지는 언제나 정동, 선동적이다. 오늘날 이미지의 생산을 좋든 싫든 금지할 길이 없으며, 금지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 미디어생태계의 다극성 전체를 사전에 포착하고 검열할 수 있는 감시 기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특정한 목적으로 특정한 이미지의 제한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자유에 대한 보수적인 견해에 기반한다. 생각해보면 이미지 자체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그냥 감각적인 무엇, 객체일 뿐이다. 여기서 당연하게도 중요한건 객체와 관계 맺는 주체다. 무언가 이미지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주체의 몫이다. 이미지 리터러시라고 하든 비평이라고 하든 그러한 능력이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긴급히 요구되는 바이다.

아이돌 산업

'SM 떠난' 이수만, 칼 제대로 갈았다..'전쟁 임박'

전쟁.. 연예계 사업이란 게 다 인신매매단 같은데 이게 마치 엄연한 '공식문화'인 것처럼 이해된지 오래다. 매우 비판적이다.

2025년 2월 20일 목요일

비화면

흔히들 외화면을 프레임 밖 세상으로의 확장이라고 이해한다. 내화면, 혹은 비화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없을까? 프레임 안에 있음에도 영화에서 배제되는 것--예를 들어 자막이나 (옛날 영화에서) 필름 먼지 자국. 아무튼 자막은 분명히 프레임 안에서 샷과 합성되어 있지만, 그걸 이미지로 보지 않는다. 무언가 외부에서 덧붙은, 원래라면 존재할 필요가 없는 무엇이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없다고 개념적으로 '감안'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는데, 오래된 텔레비전을 중고로 데려와서 거실에서 보고 있는데 백라이트가 나갔는지 중간 부분이 일자로 어둡다. 첨엔 좀 거슬렸는데, 일단 '감안'되고 나면 그런건 문제가 아니다. 개념적으로 생략된다. 하지만 여전히 검은 얼룩은 존재하지... 암튼 이런 생각 기발하지 않냐...

2025년 2월 18일 화요일

1970-80년대 대구의 비디오 담론

오늘 우연히 1988년 수화랑 전시 <오늘의 대구미술> 카탈로그에서 김정태란 작가의 <Channel 5>란 작업 사진을 보았다. 텔레비전 두 대를 쌓아 올리고 화면에 뭘 붙였는데 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텔레비전 작업이 있어서 반가워서 나중에 검색해봤더니 대구현대미술제의 적자라고 불리는 '전개' 그룹의 멤버(우리 관장도 속함)이며, 이후 작업은 구상 계열 페인팅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알기로 대구에서 비디오 작업을 꾸준히 한 사람은 박현기 정도이지만, 사실 70-80년대 한 번씩 텔레비전-비디오를 사용해본 작가는 꽤 많은 것 같다. 미술사 연구가 작가 중심으로 되기 때문에 일생에서 한 두 작품 밖에 없는 비디오 작업이 중요한가? 아니라고 판단 될 것이고 나 역시 그래왔다. 그냥 한 번쯤 해본 실험 정도. 하지만 시공간적으로 70-80년대 대구의 많은 작가가 한 두번씩 건드려봤다는 사실은 간과해도 되는가? 이건 작가라는 렌즈로 들어가면 답이 안 나온다. 이때, 분석의 대상은 작가-작품이 아니라 비디오 담론이 된다.

2025년 2월 6일 목요일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도널드 저드는 1964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미니멀리스트의 지겹도록 반복되는 무관심한 조각을 보고 보통은 수학공식과 같은 차이와 반복, 알레고리적 구조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상식적으로 평생을 입방체를 만들면서 살았는데 그런식이면 안 지겹겠나. 작가는 누구나 이전 작업보다 지금 작업이 더 나아지길 원한다. 같은 공식의 같은 컨셉의 작품을 가지고 무엇을? 연작은 대개 더 나은 한 터치를 위해서 존재한다. 저드의 작업에도 분명히 그런 장인적이고 예술가적인 관심이 존재할 테다. 나는 이게 더 나은 도장 마감, 더 좋은 재료, 더 확실한 수평수직의 레벨링 같은 수리복원사나 미술품 설치 기사가 관심을 가질만한 매우 테크니컬한 부분이 미학적인 차원으로 승화되었을 것 같다고 본다. 사진가에게 사진과 SLR 클럽의 어느 갤러리의 아마추어 사진가에게 사진은 다르다. SLR 클럽의 고성능 카메라 소유자는 예를 들어 카메라의 접사 성능이나 렌즈의 밝기 등을 확인해주는 사진을 최고로 친다는..  유사한 예로 전시장 벽 도장에 묻은 검둥이는 칠한 사람밖에 모르는데 칠한 사람은 계속 신경이 쓰인다는.. 그러면 듣는 말이 있다. 야 그거 너밖에 몰라. 그래서 미니멀리즘은 단지 논리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단지 그 새로운 미학이 새로웠거나 주변적인 것이었을 뿐이다.

요즘에 서화 쪽에 관심이 생겨서 보던 차에 이런 미학이 오히려 우리에겐 무의식중에 굉장히 익숙하단 생각인데, 우리는 예술가와 인문학자, 숙련공 등이 예술 안에서 구별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 범화가 이미 있었던 서화의 경우, 그것의 특이성은 재료를 어떻게 다루는지, 필법을 어떻게 제 나름대로 소화했는지로부터 나온다. 그러니까 A가 아닌 B를 해야 좋은 작품이 아니라 A를 더 갈고 닦아서 더욱 A의 근본을 하는 것이 좋은 작품이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차이와 반복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 계속해서 반복하는 건 무수히 다른 것을 생성하는 과정이겠지만, 그 미덕은 다름 그 자체로서 만족한다는 게 아니라 사실은 변증법적 승화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승화 과정의 실패가 곧 차이가 아닐까? 아침에 보았던 베케트의 말 fail again fail better도 생각나고.

2025년 2월 3일 월요일

권정민 교수가 비판이론 공부하는 이유

링크: 내 아들을 극우 유튜버에서 구출해 왔다 < 창가에서 < 기사본문 - 교육언론[창]

한참 SNS에서 권정민이란 사람을 욕하는 피드가 떠돌았다. 이제사 찾아봤다.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비판이론을 공부했다고 한다. "비판이론"은 공산주의 2.0을 위한 기획이라는 게 좌파의 상식이다. 좌파들의 반응이야 알만하다.

내가 재밌게 보는 건 이 사람이 정말 그걸 몰랐을까라는 부분이고, 그리고 좌파들이 이 사람을 순수한 바보취급하는 심리도 그렇다. 내가 읽기에 이 글은 소박하게, 상당 부분 속물적인 컨셉으로, 조금 완곡하게 말하자면 실용적으로 쓰였다. 비판이론이 원래는.. 이렇게 설명충 같이 논하 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보고 이런 글을 쓰라고 하면 어땠을까? 무서워서 못썼을 것 같다. 한국에 비판이론 매니아들이 한둘인가. 그럼 이런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비판이론을 자본주의의 구멍을 메우는 에이전트라고 표현하고, 내가 좋아하는 돌덕질을 오래 하기 위함이라는둥 그런 이야길 왜 쓸까?

이 글의 독자가 비판이론의 매니아들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 글은 무언가라도 호소하려 한다. 그것이 근본적인 자본주의의 해체가 아니더라도, 거대구조 개편의 지향에서는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아이 엄마의 입장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최소한의 교정이 필요하지 않냐는 것이다.

조던 피터슨의 유명한 말,  세상을 바꾸기 전에 방구석 청소부터 시작하라는 말이 웃기게도 여기서 적용된다. 세상을 바꾸고 싶거든 조그만 거 하나라도 바꿔보라. 세상을 바꾸자면서 돌맹이 색깔 어제 오늘 바뀐걸 모른다면 이게 뭘까? 이거 하나 못 바꾸는 이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자본주의를 해체하기 위한 이론이 자본주의의 구멍을 메꾸면 안 되는 걸까? 자본주의가 유지되어 다수가 착취를 당하더라도 누군가는 밥은 먹고 살아야하고 자본주의로 인해 다수가 구조적 폭력을 당하고 있더라도 누군가가 함부로 남을 때릴 때 그걸 말리는 일도 중요하다. 이것도 저것도 다 하면 안 되나? 안 된다고?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