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1일 화요일

설 익은 음식 먹기

국내산 써야 하는 '백종원 된장' 알고보니…또 악재 터졌다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걸 보면 다 같은 패턴이다. 미술계에서 신진이 과도한 주목을 받고 그 대가로 온갖 결점까지 증폭되며 자리를 떠난다는 '공식'은 요식업계 스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듯하다. 아무리 맛있는 품종의 과일이라도 설 익으면 쓰다. 처음에는 쓴지도 모르고 맛있다고 베어 먹는다. 그러다 이내 쓰다고 뱉는다. 품종은 폐기된다. 백종원의 사업 확장 욕심은 오로지 개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백종원이 애초에 그렇게까지 주목 받지 않았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좀 더 실력을 키울 시간을 벌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너무나 빨리 뜨고 너무나 빨리 소진된다. 모든 게 백종원 본인의 탓일까? 왜 우리나라는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 같은 정말 위대한 개인이 나오지 않을까?

번역의 쓸모


피에르 조리스라는 시인 겸 번역가가 쓴 번역에 대한 단상이다. 최근으로 올 수록 나는 점점 더 해외 최신 경향을 아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유는 한국에서는 그동안 외부 번역이 내부 원전을 항상 압도적으로 이겨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리스의 글은 멋지지 않은가!

"왜냐하면 우리가 충분히 많은 미국 시민들로 하여금 타자의, 타자의 시의, 모든 타자의 언어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만들지 못한다면 영국계 미국인의 추함, 탐욕, 기본적인 기독교 파시즘이 한데 뭉친 덩어리가 계속해서 백 군데 바그다드의 사람들, 도서관들, 집들, 박물관들을 날려버릴 터이기 때문이다."

2025년 3월 5일 수요일

미키 17

미키 17에서 가장 설명이 안 되는 지점은 사채빚을 피해 익스펜더블을 신청할 정도로 생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미키, 그러니까 미키1이 최초에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였느냐. 우주선이 타기 전에 무언가 훈련을 받는 장면이 짧게 휘리릭 나오고 마지막에 권총자살의 강요를 받는다. 단 한번. 하지만 자살하지 못한다. 중간에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나온다. 설명해주는 여자가 미키1과 이후 미키 시리즈는 모두 같은 거라고. 하지만 미키는 같지 않다고 대답했다. 미키는 정체성을 개체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나타나는 장면. 그러니까 미키는 애초에 미키 시리즈를 통해 생이 이어진다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혹은 못한) 사람 같은데 반대로 극중에서는 죽고 부활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좀 이해가 안 간다는.

2025년 2월 26일 수요일

선동적인 이미지

국민의 힘 SNS에 이재명 눈찢 사진이 올라왔나보다. 이런 선동적인 이미지의 생산과 순환을 오늘날 막을 수 없다--더군다나 이미지는 언제나 정동, 선동적이다. 오늘날 이미지의 생산을 좋든 싫든 금지할 길이 없으며, 금지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 미디어생태계의 다극성 전체를 사전에 포착하고 검열할 수 있는 감시 기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특정한 목적으로 특정한 이미지의 제한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자유에 대한 보수적인 견해에 기반한다. 생각해보면 이미지 자체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그냥 감각적인 무엇, 객체일 뿐이다. 여기서 당연하게도 중요한건 객체와 관계 맺는 주체다. 무언가 이미지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주체의 몫이다. 이미지 리터러시라고 하든 비평이라고 하든 그러한 능력이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긴급히 요구되는 바이다.

아이돌 산업

'SM 떠난' 이수만, 칼 제대로 갈았다..'전쟁 임박'

전쟁.. 연예계 사업이란 게 다 인신매매단 같은데 이게 마치 엄연한 '공식문화'인 것처럼 이해된지 오래다. 매우 비판적이다.

2025년 2월 20일 목요일

비화면

흔히들 외화면을 프레임 밖 세상으로의 확장이라고 이해한다. 내화면, 혹은 비화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없을까? 프레임 안에 있음에도 영화에서 배제되는 것--예를 들어 자막이나 (옛날 영화에서) 필름 먼지 자국. 아무튼 자막은 분명히 프레임 안에서 샷과 합성되어 있지만, 그걸 이미지로 보지 않는다. 무언가 외부에서 덧붙은, 원래라면 존재할 필요가 없는 무엇이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없다고 개념적으로 '감안'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는데, 오래된 텔레비전을 중고로 데려와서 거실에서 보고 있는데 백라이트가 나갔는지 중간 부분이 일자로 어둡다. 첨엔 좀 거슬렸는데, 일단 '감안'되고 나면 그런건 문제가 아니다. 개념적으로 생략된다. 하지만 여전히 검은 얼룩은 존재하지... 암튼 이런 생각 기발하지 않냐...

2025년 2월 18일 화요일

1970-80년대 대구의 비디오 담론

오늘 우연히 1988년 수화랑 전시 <오늘의 대구미술> 카탈로그에서 김정태란 작가의 <Channel 5>란 작업 사진을 보았다. 텔레비전 두 대를 쌓아 올리고 화면에 뭘 붙였는데 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텔레비전 작업이 있어서 반가워서 나중에 검색해봤더니 대구현대미술제의 적자라고 불리는 '전개' 그룹의 멤버(우리 관장도 속함)이며, 이후 작업은 구상 계열 페인팅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알기로 대구에서 비디오 작업을 꾸준히 한 사람은 박현기 정도이지만, 사실 70-80년대 한 번씩 텔레비전-비디오를 사용해본 작가는 꽤 많은 것 같다. 미술사 연구가 작가 중심으로 되기 때문에 일생에서 한 두 작품 밖에 없는 비디오 작업이 중요한가? 아니라고 판단 될 것이고 나 역시 그래왔다. 그냥 한 번쯤 해본 실험 정도. 하지만 시공간적으로 70-80년대 대구의 많은 작가가 한 두번씩 건드려봤다는 사실은 간과해도 되는가? 이건 작가라는 렌즈로 들어가면 답이 안 나온다. 이때, 분석의 대상은 작가-작품이 아니라 비디오 담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