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4일 수요일

폼 미쳤다

https://www.rochester.edu/in_visible_culture/issue1/crimp/crimp.html

한때 문화연구 동지가 모두 미술사로 돌아서는 시대에, 크림프의 일갈

"When Foster argues that a shift from art history to visual culture–or what I insist on calling cultural studies–entails a loss of history, what he seems really to mean is the loss of art history, the historicity of artistic forms as they are understood through the deferred action of avant-garde practices in the present. But far from abandoning history, cultural studies works to supplant this reified art history with other histories, histories written, for example, in relation to "the Warhol we need and the Warhol we deserve." What is at stake is not history per se, which is a fiction in any case, but what history, whose history, history to what purpose."

감성의 분할에 맞서는 동시대인의 기분관리

동시대인의 삶의 관건은 기분관리다. 많은 사람들이 제 자존감을 미친듯이 사수하려고 애쓴다. 기분이 나쁘다는 건 매우 안 좋은 신호다. 내 기분이 나쁘다는 건 세계의 오작동이다. 혹은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위협이다. 

세계와 나 사이에서 기분을 조절하는 행위는 매우 정치적이다. 기분-항상성의 유지는 면역체계와 비슷하다. 내 세계를 오염시키는 무엇은 제거되어야 할 위험요소다. 이는 매우 치열하게 작동한다. 

동시대인은 세계가 감성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미친 감성 투쟁을 설명할 길이 없다.

2023년 6월 5일 월요일

한영인, 1970년대 창작과 비평 민족문학론 연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논문, 2012 노트

민족문학론은 1990년대 전까지 문학사를 선도했으나, 1990년대로 오면서 포스트 담론이 등장하면서 민족주의를 낡은 이데올로기로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됨. 여기에 따르면 민족문학론은 이미 해체되고 있는 근대적 주권 형식에 포박되어 민족을 특권화하는 배제와 위계 담론에 불과. -> 민족문학론은 시효 만료 -> 역사화 작업 -> 민족문학론을 역사적 구성물로 바라볼 것을 요청

기존연구: 백낙청의 민족문학론을 소부르주아적 담론(1960년대 <시민문학론>)이 자기비판과 쇄신을 통해 민족적, 민중적 관점(1970년대 <민족문학론>)을 획득해가는 과정으로 봄

필자: 1960년대를 미성숙한 것에서 보는 기존 관점에서 탈피해 1960년대에서 70년대는 발전이 아니라 이행이다라고 봄. 

2. 1960년대의 담론지형과 창작과 비평
- 1960년대 순수-참여 논쟁에서 참여파는 그리 논리적이지 않았음.
- 따라서 백낙청이 <창작과 비평> 창간호에서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에서 비평입론을 세울 때 염두에 뒀던 것은 참여파의 민족주의 <- 하지만 대부분 1970년대 민족문학론을 검토할 때 1960년대 참여파의 연장선에서 이해 -> 오류
- 1960년대 순수-참여 논쟁을 포괄하는 더 큰 당대적 담론 지형이 있음: 저항적 민족주의의 대두
- <창작과 비평>에는 유기적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 문학론이 공존
- 백낙청의 <시민문학론>(1969)은 자유주의와 절연하고 유기적 공동체주의(=공화주의=/민족주의)로 확고한 이행을 보여주는 글

1) 저항적 민족주의 대두와 저항 민족주의 문학담론의 창출
~ 419 -> 516에서 박정희는 정권 정당화를 위해 민족주의 동원. 경제적으론 내포적 공업화 추진, 민족적으론 통일을 추구하면서 이데올로기적으론 반공 <-오히려 사람들은 419의 완성이라고 보고 좋아했음
~ 내포적 공업화가 미국의 간섭으로 실패하고 수출 지상주의로 전환 -> 경제자립 불가/ 일본 차관 도입(=반민족=식민지악몽) -> 63사태(1964-5): 한일협정반대투쟁 -> "매판"이란 단어 유행 -> 반미: 입으로는 민주주의 실제로는 제국주의 -> 저항적 민족주의 발호
=> 저항적 민족주의와 박정희 민족주의 사이에 그어진 전선. <청맥> 같은 문예지가 주축. 하지만 시일야 방성대곡처럼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차원. 민족의 수난, 외세를 물리치자! 우리것이 좋은 것 그정도 수준.
~"매판문학"에 대한 비판: 전통문화는 어디가고 서구문학과 이론이 잠식한다 "뉴욕과 파리에서 유행하는 병을 수입해다 앓는"다!!

2) 1960년대 창작과 비평
- 1960년대 창작과 비평은 유기적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가 공존하고 있었음
- 저항적 민족주의와 선을 그음으로써 오히려 참여문학 옹호자에게 '또 다른 형태의 순수'라고 비판받기도 함
- 김수영의 견해와 결을 함께 함. " 사회참여적인 것이나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도 좋다."
- 저항적 민족주의 진영의 비논리성, 감상주의 등을 쇼비니즘으로 봄
- 저항적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해외문학과 국내문학을 비교하는 것을 매판비평이라고 봄
- 감상을 벗어나는 방법 "지성"의 강조
-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공존은 1969년 <시민문학론>을 통해 깨짐

3) 시민문학론: 자유주의와의 결별사
- 백낙청은 차관도입을 처음에는 경제적 자립이란 측면에서 호의적으로 바라보지만,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폭력->소시민의 생산을 보고 낙담
- 당시 김현 등 68문학그룹 사이에서 유행하던 소시민의식은 백낙청이 보기에 사회 현실을 외면하거나 긍정하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음 -> 소시민의 역사적 진상을 알았을 때 과연 소시민임을 '의식'하는 것정도로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 프랑스 혁명에서 시민모델을 찾지만, 프랑스 역시 시민에서 부르주아로 타락함. 시민은 우리가 쟁취해야하는 미지, 미완의 인간상
- 한국에서 시민의식은 동학, 31운동 419등의 역사에서 찾아질 수 있음
- 시민문학: 시민 계급의 문학이 아니라 시민의식으로 충만한 문학.  규범: 리얼리즘
~ 레이몬드 윌리엄스, D. H. 로렌스 분석. 백낙청에게 자유란 소극적 자유(개인주의)가 아닌 적극적자유(공동체주의) <- 이사야 벌린

- 공화주의에 입각한 최근 연구: 간섭없는 상태 + 비예속 상태 = 비지배 자유원칙
- 백낙청의 <시민문학론>에서 전통+자유 개념 -> 공화주의적 의미에서의 자유
- 자유로운 주체 + 억압적 현실으로부터의 해방
- 백낙청이 소환하고자 하는 전통은 동학, 31, 419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자유와 해방에 대한 혁명적 '의식'이지 민족 정체성이 아님
- 하지만 백은 1970년대 민족주의로 급선회, 이유는 한국은 공화국이라기보다 독재국이었고 온전한 국가라기보다 분단 된 국가로서 반공 이념이 앞섰기 때문.
- 1970년대 백낙청이 수용한 민족주의는 공화주의 정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분단현실의 모순을 '먼저' 해결하는 실천적 이념 "민중의식을 이러한 역사적 사명에 부응하는 시민의식으로 발전시키는 과업이 곧 민족문하그이 본질을 이룬다."

3. '민중적' 민족문학론으로 가는 길
1) 
- 1970년대 백낙청은 민족문학론을 제기하면서 전통론을 확립하려고 하지만 초월적 전통에 과한 것이 아니었음
- 민족문학론은 민중에 방점: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문학만이 참다운 민족문학
- <창작과 비평>에서 1972년부터 전통론이 집중적으로 게재: 조선후기 문학 연구 <- 이는 역사학에서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조선후기사회경제사 연구가 등장한 시기와 일치

분단사학론
-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강만길의 보완
- 올바른 민족주의 주장: 민족을 근대 이후의 개념으로 한정 -> 국가, 국민, 민족

2) 비판적 정치경제학과 문학의 만남
- 민족경제학에 대한 관념은 1970년대부터 시작
- 박현채: 조선후기가 아니라 식민지시기를 출발점으로 삼음 <- 경제모순은 분단모순부터 분단모순은 식민지시기부터 -> 종속경제의 시작

2023년 6월 4일 일요일

김수림, 419혁명의 유산과 궁핍한 시대의 리얼리즘-1960-70 백낙청의 비평과 역사의식 (2012) 노트

 시민에서 민중으로

419를 자유민주주의의 요구로 축소시켜 해석하는 것에 백낙청은 반대

백낙청:

"못살겠다 다 갈아엎자" -> 형식적 주권자(법제적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주권의 요구

민중은 시민의 잠재태; 아직 스스로가 누구인지 모름

소시민-시민 -> 서구 시민도 곧 바로 시민혁명 후 소시민으로 전락. 시민은 미지. 미완의 인간상

시민혁명의 유산, 불완전하게 실현된 역사, 삶의 근거와 참모습의 망각을 통찰하는 것->리얼리즘

하지만 백낙청은 무언가 실현해야 할 목적이 있었고 온전한 개인의 실현. 그런 진보주의가 리얼리즘을 교체하게 됨

필자: 김수영의 리얼리즘은 목적이 없음. 시궁창이 파라다이스. 

황정아, 소시민문학론과 '근대화' (2017) 노트

1. 근대화라는 키워드
근대적 주체: 개인, 민족, 국민 + 시민
소시민: 시민에 비해 역사적 지명도나 평판에 있어 처지는 느낌, but 한국 근대문학에서 중요

1960년대 시민-소시민 논쟁
1차: 전후세대와 60년대 세대(68문학그룹->문지)의 세대론 논쟁
2차: 소시민문학(김주연)과 시민문학(백낙청)의 대립

근대화를 키워드로 뒀을 때 1960년대 시민-소시민 논쟁은 근대화의 기획은 대부분...
-> 1. 둘다 비슷하다. 2.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로 수렴 3. 다시 이것은 자유주의와 반자유주의의 대결처럼 이해되지만 자본주의란 입장에선 자유주의는 유신의 사생아로 둘을 식별하기 어렵다는 결론

필자: 소시민문학론은 시민문학론과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문학의 근대화가 조국근대화와 동일시 될 수 없음.

2. 소시민과 '내면으로의 선회'
- 소시민 이야기에서는 시민이 전제됨. 시민이 소시민을 비판하지만 소시민도 시민을 (미리) 비판
- 김주연의 용법 소시민은 시민이란 말을 쓰지 않기 위한 선택
- 소시민문학에서는 각자가 자기만의 의식으로 개별화함. 개성적 인간의 현현(김승옥의 <생명연습>) -> 넓게 보면 모더니즘의 내면으로의 선회와 조응. 하지만 아웃사이더로서 사회와 불화하는 모더니즘적 주체가 아니라, 개성적 인간과 같은 긍정의 함의를 가지는 것은 좀 이상함->소시민 개념의 한계. 예) 속물을 인정함. 왜냐 현실이니까. 그래서 긍정.. / 소외란 개념은 원래 근대화의 부작용. 하지만 소외가 발견되자 좋아함. 일반적인 근대화의 부산물이니까. 일단 근대적 의식이 뭐가 됐든 나타나는 게 중요. 이런식. 
- 이 개념이 왜 그렇게 중요했는가?
 = 자기 밖의 의지(전근대, 샤머니즘, 인습 등 미개한 현실)로부터 절연하는 내면
 = 그정도로 사회가 미개했기 때문에 쁘띠 부르주아라도 되자. 
- 제임슨에 따르면 내면으로의 선회, 주체성을 중심에 놓는 것은 모더니즘을 설명하는 관습적 방식에 불과함. 사실 자본주의 근대는 탈주체, 탈인격화를 동반. 모더니즘으로 분류되는 작업에서도 주관적인 것의 재현에 대한 금기가 중요한 요소였음. -> 따라서 소시민 문학론은 모더니즘의 관습적 해석에 기댄 주체론. 

3. 트리비얼리즘과 '내면적' 근대화
- 리얼리즘 대신 트리비얼리즘. 사소한 사물의 현상에 하나한 관찰. '사소한 것의 사소하지 않음'.
- 트리비얼리즘이 채택되는 건 사소하지 않은 것을 배제하기 위함(큰 이야기, 큰 판, 큰 정치적 구도 등의 배제). 
필자: 사실은 사소하지 않은 것을 사소하게 만드는 기제가 트리비얼리즘. 
사물의 정당한 제 무게를 달아주는 건 소시민의식. 사물을 발견하지만 '평균화'를 거쳐 내면으로 수렴.=> 나르시시즘 cf. 플로베르의 사실주의는 이런 트리비얼리즘과 다름. 무분별하고 원자적인 묘사행위는 나르시시즘을 위한 재료로 '평균화'되는 것이 아니라..자기화나 주관화로 해석하지 말고.. "사실은 선택하지 않는 스타일"(랑시에르)
필자: 사소한 것의 포착, 사물화는 주관화/개성화(트리비얼리즘, 김주연)로 가지 않고 몰개성화 방향도 있다(사실주의, 플로베르, 랑시에르). 그런의미에서 트리비얼리즘은 근대문학을 보는 특정한 이념에 불과.

4. 근대 주체의 전범으로서의 소시민

- 소시민은 시민의 전단계로 상정
- 소시민과 시민은 둘 다 자율적 주체를 상정
- 하지만 소시민은 한계를 가진 주체. 속물적임. 그럼에도 소시민이 주장되는 이유는 샤머니즘 같은 구습에 대적하기 위한 상대적인 위치 설정이 필요했기 때문
- 그 과정에서 사소한 주체의 사소하지 않음(소시민)이 주장되나 사소하지 않은 주체(시민)은 생략되거나 애매해짐


5. 문학의 근대화와 문학의 자율성
- 소시민론이 문학의 자율성을 문학의 근대화와 등치시킴
- 구조주의의 수용과 함께 문학의 자율성 주장이 이뤄져 문학의 자율성이 아무런 의심을 받지 못했음(구조주의는 가장 발전한 과학적 방법론)
- 랑시에르에 따르면 근대성과 자율성의 관계는 정 반대임. 랑시에르에게 미학적 예술체제에서 예술은 예술이 아닌 한에서 예술이라는 근본적인 역설. 예술은 이 체제 내에서 스스로에게 이질적. 자율성은 말하자면 자기 해체성. 말할 수 있는 것과 볼 수 있는 것의 새로운 연결. 말과 사물을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 

6. 소시민문학론과 근대주의
- 소시민 문학론은 근대화를 꾀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근대적 현실과 발본적 대결하고 역사화할 지평을 닫았다는 것이 문제.
- 자율성이 사회비판과 연결되는 서구와 달리 자율성이 사회비판과 절연하는 하나의 태도가 됨. (내부비판으로 멈춤)
- 그런 의미에서 소시민문학론은 모더니즘인 동시에 근대주의(근대추앙)

채희영, 1960년대 소시민 문학 논쟁, 서울시립대 석사학위 논문, 2013, 노트


1960년대 평단: (구세대 vs 전후세대 ) vs 68문학그룹
- 구세대: 문학의 전통 계승 여부를 묻는 전통론, 순수문학론
- 전후세대: 참여문학론
- 68문학그룹: 419세대론 - 개인, 의식, 언어, 구조


68문학그룹은 백낙청이 개입하며 분화 -> 시민문학(백낙청-현실참여) vs 소시민문학(자유주의)

소시민의식(김주연)
<새 세대 문학의 성립> 1960년대 작가를 소시민 의식으로 집약
소시민의식: 문학언어의 특성을 대변하는 새로운 인식으로부터 출발해 현실+역사의식까지 포괄한다고 봄(여기서 현실이나 역사의식은 전후세대의 그것과 차이가 있음. 전후세대는 현실지향성(정치적 태도 같은)을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68문학그룹은 개인내면의 적절한 포착 자체가 역사인식과 동일하다고 봄)-> 트리비얼리즘, 현실에 대한 소극적 태도
소시민 그 자체를 긍정하진 않지만 그런 현실을 인정함->개인의 문제와 함께 지식인 자신의 문제까지 다루고자 함

시민문학론(백낙청)
기본적으론 소시민의식을 비판함
소시민의식=감성적 자아
소시민은 시민계급의 일원이면서 자립자족적인 시민이란 환상에 빠져있음
소시민의식은 시민의식에 다다르기 위한 전단계의 낮은 차원의 의식 수준 
역사의식과 다름, 시민의식과도 더 다름->리얼리즘론

필자: 소시민 의식과 시민의식은 같은 기반 위에 세워진 것임 - 개인
김현이 문학사회학으로 나아가고 백낙청이 문학의 자율성의 중요성을 깨닿는 지점은 상호 보완의 여지가 있다고 보여짐

좌담회
- 언어 관련
서기원: 언어 내부와 언어 외부. 두가지가 있음. 언어는 표현의 수단이다
vs
이청준: 언어 자체가 상황과 내부의식을 포함. 수단이 아님. 
김주연: 현실은 문학작품에서 곧 언어. 수단이 아님.
김현: 언어는 상황과 자아와의 관계

- 역시의식 관련
서기원: 국가나 민족 현실 문제가 제일 우선시되어야 함. 분단현실을 60년대는 전후세대보다 날카롭게 보고 있지 않음. 419혁명이 내포하는 자유주의적 감성만을 취하려는 처사는 비판되어야 함. 

김현: 1960년대 가장 큰 사건, 419는 질적으로 다른 사건으로 문학사적 해석 역시 달라져야 함. 하지만 인식구조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므로, 문학의 감상주의적 접근, 인간 내면의 가치를 승인하는 것을 치료법으로 삼을 수 있음. 우리 의식의 기초를 내부구조에서 찾지 않고 자꾸 815, 625 같은 외부 트라우마로 돌리는 것은 비판되어야 함. 소시민의식은 자기 상황의 폐쇄성과 한계에 대한 투철한 의식이자 극복 노력임.
김주연: 김현과 대동소이. 개인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시작해보자. 

2023년 6월 1일 목요일

모뉴먼탈

"어떤 것에 모뉴멘탈한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설명할 수 없다. 생각컨데 그것은 소재라기보다는 내적인 비전, 정신적인 그 무엇이다. 그것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세로 10cm, 가로 8cm 정도의 세잔느의 작품도 모뉴멘털리티를 지니고 있다." - 헨리 무어 (홍사성, 세계조각사1, 1993, 광성문화사, 398쪽)

공공미술, 예컨대 <슈즈트리>가 '흉물'이란 소리를 들으며 대중의 원성을 사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의미도 없고 예쁘지도 않다. 개념과 미학 둘 다 결여. un-memorialable하고 un-monumental한 object의 공동체적 기각... 기억과 기념 ... 아이덴티티-공동체와 역사

개인적으론 언모뉴먼탈한 작업이 좋다...근데 시대가 좀 더 필요로 하는 건 모뉴먼탈한 무엇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