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8일 금요일

취작

미대 나와서 작가 하면서 먹고 살 걱정하며 애꿋은 공립미술관에 취작(취직작업)할 생각하지 말고 애초에 공산주의 사회부터 만들고 나서 작가 활동을 하는 게 차라리 빠르려나.

와..

권모란 인물의 트위터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꼭 누구 보는 거 같다... 무슨 자기계발서 작가인 마냥 미술계 젊은이의 생존 수칙을 막 떠벌이고, 포스트미디엄 같이 서양 미술이론에서 발굴했지만 여전히 애매하게 남아 있는 용어를 막 거르지 않고 사용하네?? 또 세대교체가 마치 혁명적인 사건인 것처럼 말하네? 그리고 10년단위 생년을 기준으로 확 묶어서 인구를 동질화시키고 10년 단위로 뭔가 엄청난 질적인 변화가 있는 것처럼 말하네? 와... 이런 사람이 무슨 이유로 마감에 쫒겨서 잠도 설치고 피곤한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 와... 90년대생 다윈주의자. 멋지다. 한국미술 발전하겠네!

반이정 평론

몇 번 우연찮게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했지만 사실 잘 모르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글을 보면 그냥 솔직 담백해서 좋다. 자신의 한계 속에서 작품을 해독한 결과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잘 모르겠는 건 잘 모르겠다고 하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곰곰이 생각한 결과를 쓰기도 하고.

솔직함의 미덕은 이런 것이다. 어떤 일관된 역사나 이론, 혹은 최소한 경향성이 자신에게 있다는 전제 하에 비평글을 솔직하게 써 나가는 행위는 일종의 평론가만의 작은 역사를 써 나가는 일과 같다. 이것은 아마 비평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업적 아닐까.

아무튼 그래서 반이정 평론을 제대로 읽으려면 반이정이라는 사람 자체를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배경, 장점과 단점, 한계까지도. 평론가가 평론집을 낸다면 아마 서문에는 그런 것을 써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논문 끝나고 나면...

좋든 싫든 올해가 끝나면 논문을 완성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물론 박사도 생각이 있지만 목적지를 결정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일단은 생각 보류. 그렇다면 커리어다.

혼자 집에 지내는 걸 수년간 지속하다보니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한다는 게 이제 좀 자신이 없다. 누가 지금의 날 뽑아줄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김밥천국 알바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미술학원도 생각해보고 음식 가게도 생각해보고 재태크에 관한 허황된 망상도 종종 한다. 밥 벌어 먹으려고 미술의 이상을 포기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 대비 잃을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다른 분야에서 돈을 버는 것이 수익도 높고 마음 편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튼 이것도 잘 모르겠으니 일단 보류.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이플럭스 저널 같은 플랫폼을 한국에 만들고 싶다. 물론 사업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학자와 평론가와 작가가 이플럭스에 글을 조금씩 게재하고 시간이 흘러 글이 쌓였을 때 하나씩 책으로 나오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했다. 좀 캐쥬얼하긴 해도 어쨌거나 나오니까 그게 떠도는 말의 양을 만들어 낸다. 백남준의 말을 빌리자면, "무한한 양은 좋고 나쁨의 질을 없애버릴 수 있다." 왜 한국에서는 그게 되지 않을까? 미술씬이 작아서? 생각이 부족해서? 사람이 없어서? 관심이 없어서? 분명한 것은 보편적 기대치라는 게 현실적으로 낮긴 하다. 어디 라운드테이블 디스커션에 참여하는 패널, 연구 공모 사업에 참여하는 연구자, 잡지에 리뷰를 게재하는 평론가, 큐레이터 등 한국 미술계의 거의 대부분은 욕먹지 않을 어떤 적당한 선을 알고 있다. 그정도 선을 따라서 대부분의 기금이 돌고 행사가 돌고 전시가 돌고 글이 돈다. 아이고... 몇년이 필요할까?

문재인 재기해와 헤이트 스피치

헤이트 스피치를 종종 권력 관계에서의 약자에겐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말을 한다. 말하자면 "서발턴은 말 할 수 있는가." 물론 없다는 것이다. ... 그런데 위키피디아를 보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몇몇 나라의 법에 따르면, 특정한 그룹의 멤버쉽에 기반한 그룹이나 개인을 공격하는 모든 발화 행위를 헤이트 스피치라고 정의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따위를 참고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다만... 쩝.)

Hate speech is speech that attacks a person or group on the basis of attributes such as racereligionethnic originnational originsexdisabilitysexual orientation, or gender identity.[1][2] The law of some countries describes hate speech as speech, gesture or conduct, writing, or display that incites violence or prejudicial action against a protected group or individual on the basis of their membership of the group, or because it disparages or intimidates a protected group, or individual on the basis of their membership of the group. The law may identify a protected group by certain characteristics.[3][4][5] In some countries, hate speech is not a legal term.[6] Additionally in some countries, including the United States, hate speech is constitutionally protected.[7][8][9]

어쨌거나 위키피디아에서 헤이트 스피치가 향하는 속성의 예로 "인종, 종교, 인종, 출신국, 성별, 장애, 성적 지향, 젠더 정체성"을 들었으므로, "문재인 재기해"는 헤이트 스피치의 예에 들어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재기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문재인 재기해"는 헤이트 스피치가 될 수도 있다. "재기해"를 단순히 '죽어라'로 해석하면 모욕죄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있어도 헤이트 스피치는 아니다. 래디컬을 옹호하는 평론가는 이쪽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런데 모욕죄 또한 되지 않으려면 전제 조건이 한 번 더 필요한데, 그러니까 약자가 강자에게 하는 모욕적인 언사는 '정치적인 것'의 일종이며, 거기다가 공공장소에서 집회 및 시위를 통해 대한민국 최고 통수권자를 모욕하는 행위는 그 강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정당한 정치 행위라는 것이다. 이런 전제의 전제가 합쳐져서 "문재인 재기해"는 헤이트 스피치도 모욕죄도 아니라는 기적의 논리가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재기해"를 먼저 정치적 관계로 해석한 뒤, 다시 헤이트 스피치인지 아닌지를 따지면, 재기해에 붙은 혐오적 혐의의 색채는 옅어진다. 다시 간단히 말해서, 남성으로서의 문재인을 덮어 버리고 대통령으로서의 문재인을 강조하면 모든 혐오나 범죄의 행위에 면죄부가 내려진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평소의 래디컬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과는 반대다. 래디컬은 모든 사안에서 젠더 구조를 먼저 의식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통렬한 예는 <더러운 잠>에 관한 페미니스트의 공격이다. 여기서는 절대로 대통령이란 신분이 앞으로 먼저 나오지 않는다. 박근혜의 여성성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고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얼마나 많은 칼럼을 쏟아 냈는가? 그들은 대통령 박근혜에 관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뷔페미니즘" 같은 혐오 발언(이것은 위키피디아의 정의를 보더라도 혐오 발언의 일종이다)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면에서 일정부분 말이 나오게 된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거꾸로 된 방식이 정녕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혹은 설명을 달리 해야 한다. "재기해"는 헤이트 스피치가 맞으며, 정치적인 것은 때로는 헤이트 스피치를 필요로 한다고 말이다. 혐오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 싫지만 래디컬 스탠스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좌파의 이중성, 도덕적 결벽증이 이 모순을 봉합하려 한다. 이것이 그들의 진영 밖의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며 지금 좌파적 스텐스를 보존하고 싶어하는 자의 한계인 것 같다.

며칠전

추석 이틀 전에 김민관씨에게 연락이 와서 잠깐 몇몇 사람들과 만났다. 김민관과 이양헌, 문정현이었는데, 쌈지에서 행사를 끝내고 이쪽에 들렀단다.

대화는 모두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다른 인물에 대한 평가와 호/불호로 채워졌다. 언젠가부터 이런 대화 내용에 좀 많이 지친다. 그런데 이제 미술계를 알아가는 그들의 입장에선 재미있는 주제인가 보다. 미술계엔 호사가가 많고 실제로 그들이 만든 소문이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부터 이양헌은 자꾸 나에게 누구누구 어떠냐면서 묻는다. 그 질문의 의도가 궁금하면서도 그냥 정말 궁금해서 그러려니 하면서 내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 말이 부적절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언젠가는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 될 때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냥 이야기했다.

문정현은 나로선 처음으로 제대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건데, 미술계에 대한 분노 같은게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잡지에서 자신에게 청탁을 안 한다는 것에 그랬었는데, 음... 미술계 생활 이후로 제대로 된 청탁을 몇 번 받아보지 못한 나로선 좀 겸연쩍어졌다. 문정현은 먹고 살 것도 걱정을 했는데... 요사이 경제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나로선 또 좀 겸연쩍어졌다. 음...

황교익에 대한...

노정태의 논평은 한 절반만 맞는 것 같다. 황교익은 재료근본주의자라기보다 민족주의자에 가깝다. 뭐랄까. 우파 민족주의는 아니고 좌파 민족주의 정도 될 것 같다. 천조국의 가치를 받들고, 그것에 위배되면 천조국의 임금님이라도 비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노정태가 심기 불편해하는 건, 아마 황교익의 그런 스탠스 때문일 것이다.

재료근본주의자라는 건 미식계의 그린버그라는 건데 황교익은 그렇게 내재적 비판을 자주 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시점의 사회에서 구성되어 있던 어떤 전통을 근본으로 내세운다. 아마 본격적으로 자본주의화 되기 이전. 어쩌면 재료근본주의도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황교익에게 근본적인 재료란, 역사와 장소와 재료가 일치하는 뭐 신토불이 그런 거 아니겠나. 그래서 황교익의 논설에는 '원래 그렇지 않았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황교익은 아주 정치적인 태도로 미식 비평을 행한다. 떡볶이 비판은 이명박 정부의 무식한 문화산업을 겨냥한 것이고 치킨 비판은 프렌차이즈를 겨냥한 것이다. 때로는 이것이, "원래 맛이 없는 것을 맛있는 것처럼 세뇌한 것이 떡볶이와 치킨은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다," 같은 재료근본주의적 태도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 여기에는 미식의 자본주의화에 대한 심기 불편함과 함께, 자본주의 이전을 향한 향수가 동시에 자리잡고 있다.